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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 Apr 22. 2019

어른이

된 걸까?

 나는 내가 어른이 되면 대단한 사람이 되어있을 줄 알았다. 적어도 '쇼퍼홀릭' 여주인공처럼 멋지게 일도 사랑도 쟁취하는 사람이 되어있을 줄 알았다. 현실은 지상파는 커녕 공중파에도 한 줄 비칠까 말까 한 인생이지만. 

 나를 비하하거나 불쌍히 여기려는 의도는 아니지만 현실의 '어른' 은 내가 여태 생각했던 어른과는 달랐다. 나는 어른이 되면 많은 것이 바뀌고, 나도 변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바뀐 것은 '띠딕' 하고 찍혔던 버스카드가 '띡'하고 찍힌다는 것과 720원을 내며 버스를 타다가, 이제는 1250원을 낸다는 것. 그리고 내 생활비를 온전히 스스로 해결하기 시작했다는 것. 


 꿈을 크게 가지고 노력하라는 말에 크게 가지고 노력했지만 아직 나는 아무것도 되지 못했다. 곁다리로 애매한 재능만을 가지고 어디에 의지해야할 지 모르고 헤메이는 것은 무엇을 해야할 지 모르는 상태와 똑같다고 생각했다. 이상만 높은 채 현실이 어디인지 찾지 못하는 기분이 들었다. 당장 뭔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해서 내가 평생 뭔가 되지 못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막연한 희망만을 가지고 있기에는 지금의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걸. 

 카를린 엠케의 <혐오사회>를 읽다 보면 판도라의 전설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부분이 나온다. 판도라의상자. 상자 이야기는 그리스신화 안에서도 유명한 에피소드 중 하나다. 

- 제우스는 판도라에게 악덕과 해악이 가득 담긴 상자를 주어 지상으로 보냈다. 그리고 그 상자에는 그때까지 인간이 알지 못했던 끔찍한 것들이 담겨 있으 절대 열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러나 판도라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뚜껑을 열어 안을 들여다보았고 그러자 병과 굶주림과 근심이 상자에서 빠져나와 지상에 퍼져나갔다. 그런데도 판도라가 보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그녀가 다시 뚜껑을 닫을 때 상자 밑바닥에 남아있던 희망이었다. 그러니 제우스는 희망이 명백하게 해악에 속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카를린 엠케<혐오사회>중


 제우스는 희망이 해악에 속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책의 저자는 그렇게 말하고 있다. 모든 종류의 희망이 아니라 근거없는 희망. 믿게 만드는 희망. 그렇지 않을 것임을 알면서도 지고 있는 희망은 해악이라고 이야기한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 아무런 근본이나 결말이 없는 희망은 가지고 있어봐야 현실을 도피하는 좋은 안식처 외에는 될 수 없다. 그리고 그 안식처는 나만의 작은 숲속 오두막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다 무너져가는 흉가일 수 있다. 

 판도라가 만약 상자를 열지 않았더라면, 아니면 상자를 모두 열어 안의 것들을 모두 내보냈더라면 지금의 우리가 조금 달라졌을까. 


 사실 전설은 전설일 뿐이고 그에서 오는 교훈은 일시적이다. 나는 내일이 아니라 오늘을 걱정하며 살아야 하고, 지나온 것들을 후회할 수도 없다. 결국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어른도 별 거 없구나 하는 것 뿐이다. 내가 어른이 되었지만 나는 여전하다. 보다 나이를 먹어도 그럴 것이다. 긴 머리보다 짧은 머리가 좋고, 예쁜 옷 보다는 편한 옷이 좋고, 구두보다는 운동화나 단화를 좋아하는 것 처럼. 9시 뉴스에 지나가는 한 줄 처럼 살더라도 후회하지 않게는 한번 살아봐야겠다. 희망에 너무 기대지 않으면서. 

 1250원의 버스비를 감당하면서, 오늘은 어디로 향할지 발걸음을 늦추면서. 그렇게 살아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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