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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 Apr 12. 2019

그러나

다시

 내 삶에서 그래도 가장 길었던 연애를 마쳤다. 연애를 마치고 나니 드는 생각은 수 없이 많았지만, 차마 꺼내어 이야기하기에 부끄럽거나 사소한 것이었기에 덧붙이지는 않겠지만 모두 하는 생각과 비슷했을 것이다. 그립기도 했다가, 아니기도 했다가. 그저 추억으로 남기고 싶다가 다시 들여다보고 싶은. 나는 여러 연애를 거쳐오며 수없이 다양한 방법으로 질척거려왔다. 남들이 자세히 듣는다면 뭘 저렇게까지 하나 싶을 정도로. 그래서 이번에는 그러지 않기로 했고 보다 참는 법을 배웠다.


 긴 연애를 마치고 나서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은 괜찮냐는 거였다. 괜찮아? 잘 지내? 별 일 없어? 하는 말들. 사실 형태는 다 다르지만 내 대답은 '괜찮아' 였다. 괜찮지 않을 때도 괜찮다고 말했지만 사실 전혀 괜찮지 않았었을 때가 훨씬 많았다. 이제는 정말 괜찮지만.

 이별을 겪는 와중에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 중 Y의 말이 기억난다. Y는 아직까지도 동갑내기 남자친구와 연애를 하고 있는 4살 터울의 언니인데 Y커플과 우리 커플의 사귄 날짜는 일 주일 정도 차이가 났기 때문에 서로의 연애를 잘 알고 있는 편이었다. 다르면서도 비슷한 연애의 과정을 겪어가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Y는 내가 헤어졌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자기도 가끔 이별을 떠올린다고 했다. 그런데 본인은 헤어질 수가 없다고. 그래서 왜냐고 묻자 Y는 살짝 인상을 찡그리더니 그냥 날 누가 다시 좋아해줄까 싶어서. 그게 무서워서. 하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하나 더 덧붙이자면 자신이 누군가를 다시 이만큼 열정적으로 사랑해서 다시 처음부터 모든 걸 맞춰주고 같이 이겨내자고 말할 수 있을 지 모르겠다고. 그래서 섣불리 헤어지기가 무섭다고 이야기했다.

 그녀가 하는 고민들은 오래 사귄 연인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 쯤은 해볼 법한 것이었다. 나도 그와 헤어지기 직전에 그랬듯이. 나는 내가 누군가를 열렬히 다시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그 사람이 나를 나처럼 좋아해 줄 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말처럼 되면 얼마나 쉽고 좋을 일인가. 날 좋아해줘 하고 이야기하면 나를 좋아해주고, 이제 그만 좋아할래 라고 뱉으면 그만 좋아하게 되면. 그러나 우리는 안다. 그렇지 않을 것이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연애를 마치고 한참 혼자인 시간이 늘어나면서 나는 다음 연애를 준비하기보다 나를 재정비했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에 더 주목했다. 내가 뭘 좋아했었는지 다시 찾아갔다. 전 연애로 인해 포기한 것들을 다시 떠올리려 애썼다. 삼 년이었다. 자그마치 삼 년. 살아온 세월에 비하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왜인지 살아온 날들 내내 얻은 것 보다 삼 년간 얻은게 많았고, 살면서 잃은 것보다 삼 년간 잃어버린 게 많았다. 내가 아닌 사람과 맞추어 함께 지낸다는 것은 그런 거였다. 얻은 것도 잃은 것도 많은 것. 얻는다고 해서 전부 내 것이지는 않았다.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잃은 것은 전부 내 것이었는데.

 근래 알게 된 것은 원래 내가 악세사리를 이것저것 차고 다니는 것을 좋아했다는 건데, 3년간 이 사람을 만나오면서 나는 악세사리를 전부 포기했다. 아마 내가 끼고 다녔던 것은 은색 커플링 하나 뿐이었을 것이다. 간간히 차던 팔찌나 시계, 반지같은 것들을 포기했던 이유는 '손 잡는데 아프다' 고 했던 그 사람의 말 한마디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사실 그는 강요한 적은 없다. 말 한마디 뿐이었지만, 나는 그 순간에는 미미하게 불편할 그의 하나하나까지 전부 생각해주려 노력했기 때문에 쉽게 포기할 수 있었다. 이제와 괘씸한 기분이 드는 것은 별개의 일이지만.

 악세사리는 다시 사면 되고, 버린 것은 잊으면 되기에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애초에 죽을만큼 소중한 것들은 아니었던 탓도 있다. 다시 할 수 있는 것들과 아닌 것들.


 



 다시 Y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면 나는 Y의 말에 나는 안 그래. 라고 대답했던 거 같다. 나는 다시 나 좋아해줄 사람 만날 수 있을 거 같아. 언제가 되고, 누구가 되든. 시기는 중요하지만 절대적이지 않고 대상 또한 그렇기에. 어떤 관계가 생기고 또 어떤 연애를 하던지. 나는 이번보다 더 사랑해줄 자신이 있다고. 그래서 다시 노력할 수 있을 거 같다고. Y는 내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너라면 왠지 잘 할 거 같다고. 사랑도. 너의 생활도. 우리는 짧게 서로를 위로했다.

 알고 있다. 새로운 사랑을 시작해도 두려울 것이고, 두렵다가는 슬플 것이고, 슬프다가도 행복하게 될 것이라는 걸. 하지만 세상에는 알아도 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 아는 게 힘이고, 아는 게 약이라는 말은 이럴 때는 적용되지 않는다.


 다시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말하게 될 때 나는 좀 더 좋은 사람일 거고, 그래서 지쳐 제 풀에 나가떨어지기 전까지 그 사람에게 좋아한다고 끊임없이 말해줄 것이다. 그렇지만 다음에는 나를 잊거나 잃어버릴 만큼 사랑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말처럼 쉽게 되는 것은 없지만.


2019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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