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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 Sep 20. 2020

Y의 여행(1)

기억을 두고 오려고 여행을 가던 날의, 지극히 개인적인 기록.

 Y는 여행을 가 본 기억이 없다. 그래서 '여행' 하면 전에 갔었던 뉴질랜드만 떠올렸다. 좋은 기억이지만 동시에 누구랑 갔냐, 고 물으면 뻔뻔히 대답할 자신은 없었다. 그래서 여행을 가기로 했다. 어디든 좋으니. 국내 여행이라도 좋으니까. 솔직히 Y에게 해외는 너무 멀었다. 그녀는 그런 타입의 인간이다. 완벽한 타이밍을 찾고 찾다가 미루고 미뤄져서 결국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좋은 말로는 신중했고 나쁜 말로는 나태했다. 그리고 이상한 두려움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자신은 어디서든 곧잘 할 것 같다는 근거없는 자신감에서 우러나오는 두려움이었다. 그녀는 신이 아니었기에 모든 상황을 예측하고 대응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매번 자신의 선택이나 방향이 틀리지는 않았을 지를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러다가 포기하게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만은 달랐다. 정말 떠나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없이 이십 대 초반을 보내고 나서야 든 생각이지만, 그녀는 떠나야만 했다. 아마 자신의 삶에 이만큼 여유로운 순간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었다.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Y는 답지않게 짐부터 꾸렸다. 낡은 베이지색에 갈색 가죽 테두리가 둘러진 숄더백을 꺼냈다. 구제샵에서 예전에 사 두고 한 번도 메고 나갈일이 없었던 가방이었다. 그녀는 가방을 사면서 꼭 여행가들이 메고 다니는 가방 같으니, 꼭 여행을 가서 메겠다고 다짐했던 것이 떠올라 장롱 구석에 쳐박혀있던 것을 찾았다. 뭘 챙겨야 할 지 고민하다가 손에 잡히는 대로 담았다. 우선 항상 가지고 다니는 수첩과 펜을 앞주머니에 챙겨 넣고, 속옷을 두 개, 얇은 겉옷을 하나, 갈아입을 원피스를 한 장. 짐을 더 많이 챙길까 하다가 어디로 얼마나 가야할 지도 몰라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정도만 챙겼다.

 원래 지독하게 계획을 세워 꼼꼼한 일정을 다 해내고 나서야 만족을 느끼는 타입의 인간인  Y는 슬슬 불안해왔지만, 우선 어디로 떠날 지를 먼저 고민해봤다. 그녀는 바다가 가고 싶었다. 언제나 바다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살았다. 여행을 가게 되면 바다로 제일 먼저 가야겠다. 날이 어떻든 상관 없었다. 폭풍우치는 밤이 아니라면. 그러나 서울에만 20년을 넘게 산 그녀는 어디로 가야 좋을 지 알 바가 없었고, 혼자 힘으로 하는 여행이란 게 어떤 의미인 지 모르기에 출발 전부터 고민만 해왔다.

 그 때 막연히 바다에 가고 싶어 중학교 시절 친구와 함께 월미도로 향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중학생. 얼마나 무모하고 과감한 시절인가. 교통카드와 몇 푼 용돈만을 들고 떠났던 기억. 바다를 보고 싶었고, 같이 멀리 나가보고 싶었고, 그만큼 서로가 있다면 쌀쌀맞은 여름 밤 바다도 이겨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단어만 들어본 공간에서도 낯설지 않은 이가 있다면 공간의 낯선 풍경들조차 익숙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니까. 적어도 친구와 함께 가기로 결심했던 그 날의 월미도는 그랬다.


 대책없던 여행의 출발은 독한 감기를 얻는 것으로 끝났지만 그마저도 함께했기에 추억이었다 회상할 수 있어 그저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다만 이번 여행은 혼자라는 점이 아주 달랐다.


 Y는 이것저것 고민하던 끝에 전 연인과 함께 방문하기로 약속했던 장소인 속초를 떠올렸다. 막연히 파도치는 모습을 보고 나는 파도치는 바다를 사랑한다고 이야기하던 곳. 고속버스를 타고 두 시간이 조금 넘는 거리에 있는 그 바다. 사진으로만 꼭 가고 싶다고 이야기하던 곳.

 가방에 오래 된 수첩과 산 지 얼마 되지 않은 펜을 넣으며 생각했다. 될 수 있다면 나쁜 기억들도 다 털어버리고 오자. 두고 오자. 가본 적 없는 곳에.


 Y는 정말 답지않게 갑작스럽게 여행을 결정하고, 하루만에 선언하듯 떠났다. 이번에는 정말 혼자서 알찬 여행을 하고 오리라는 결심. 하지만 여태 열심히 살아왔으니 여행 중에는 '알차게'는 빼고. 적당히.




 한층 쌀쌀해진 날씨를 헤치고 Y 버스 터미널에 혼자 앉았다. 강변역까지 오는 내내 설레임에 마음이 두근거렸다. 강변역은 유달리 볕이 좋았다. 오전  시의 강변역. 계속해서 직장을 다녔더라면 느껴보지 못했으리라. 오전  .  시간에  막힌 사무실이 아니라 강변역의  앞에 서서 떠날 곳을 그린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가 하는 생각. Y 벅차올라 눈물을 흘릴  같았다.  앞이 아른거렸다. 드디어 벗어난다는 마음과 함께.


 Y는 항상 어딘가로 떠날 때면 눈물이 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뉴질랜드로 가는 공항 버스 안에서부터 그랬듯이. 아직 비행기에 몸을 싣지도 않은 출발이기만 한 순간에도. 정말 떠난다는 생각과, 살던 곳에서 멀어진다는 불안감이 교차하는 순간.



2020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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