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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 Feb 13. 2021

우리가 사랑하던 순간에 대해

그리고 계속해서 사랑하는 순간에 대해

 우리는 매 순간 이별한다. 내가 처음으로 겪은 이별은 작은 햄스터에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사랑에 대한 제대로 된 정의도 없던 순간에, 나는 이별했다. 사랑이 어떤 것이냐고 물으면, 나는 지금도 사랑보다는 이별에 치중해 대답한다. 제대로 이별하는 게 사랑이죠. 이렇게 대답하는 것. 제대로 이별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고, 생각보다 오래 걸리니까. 제대로 이별하는 것. 잘 모르면서도 그런 게 사랑이죠. 이렇게 이야기하는 내 자신도 어렵지만. 


 어릴 적에 아주 작은 햄스터를 한 마리 키웠는데, 반려동물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하다보니 어려운 일이 꽤 많았다. 심지어 나는 당시 종이 다른 햄스터를 한 우리에 합사해서 키우면 안 된다는 사실 조차 모르고 살았으니. 정글리안 햄스터-까맣고 몸집이 큰 녀석-과 골든햄스터-밝은 금빛 털을 가진 햄스터-를 한 우리에서 함께 키웠는데 덩치가 더 컸던 정글리안이 골든의 콧잔등을 상처내고 세게 깨물어 상처를 입혔었다. 처음 정을 주고 기른 동물의 종말은 생각보다 처참했고, 작은 골든은 숨을 색색 몰아쉬며 케이지 한 쪽에 웅크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가련하고 안타까워 바로 케이지에서 꺼내 작은 손수건에 싸고 호, 호, 하고 햄스터를 향해 작은 입김을 내뿜었다. 작은 숨을 몇 번 몰아쉬다가 쒹, 쒹 하는 이상한 소리를 내고 아주 멈춘 것이 마지막이었다. 나는 그 날 태어난 이후로 제일 많이 울었다. 정말로. 이러다가 인간의 몸의 70퍼센트가 물로 이루어졌다는데 물이 다 빠져나가 죽어버리지는 않을까 싶을 정도로. 

 작은 금색의 햄스터는 집 앞 화단에 묻어주었다. 그러면 안된다는 걸 알게 된 것은 조금 더 후의 이야기. 그리고 묻어주는 순간까지도 참 미안하다는 말을 많이 했다. 결국 이 아이의 죽음은 내가 제대로 잘 알지 못했던 햄스터에 대한 간단한 지식 때문이니까. 알고 있었더라면 결코 둘을 같은 우리에서 기르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다른 두 종을 키우면 안된다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결코. 

 커다랗던 녀석은 그 이후에 결국 우리 집을 떠났다. 내가 너무 밤낮을 새며 울었던 까닭이다. 엄마는 원래 우리에게 햄스터를 쥐어주었던 삼촌에게 도로 데려가 키우라고 이야기했다. 


 작은 이별을 겪은 후에 한참이 지나서야 깨달은 것은, 만나는 것도 헤어지는 것도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 다만 만나는 일에서 우리는 대개 준비할 수 있지만 이별 앞에서는 어느 한 쪽은 준비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항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른 것들을 준비 없이 사랑하곤 했다. 예를 들어 아직까지도 내 무릎에서 코를 고는 강아지나, 길에서 만난 고양이. 그리고 지나간 사람들도. 사랑을 준비하기에 나는 계속해서 어렸다. 이별을 겪고 나면 공허하고 외롭고 괴로운 마음에 시달리다가, 괜찮아졌을 즈음 드라마 속 운명적인 연인들처럼 갑작스럽게 사랑을 시작하곤 하니까. 

 그렇지만 요즘은 준비없이 사랑할 수 있는 일이 좋지 않은가 싶은 생각이 든다. 세 번의 연애가 끝나고 나니 나는 준비하고 계획대로 사랑에 빠질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아서. 그리고 나라는 사람이 생각보다 마음의 폭이나 품이 넓거나 깊지 못해서 다른 사람들을 깎아 내리며 나를 사랑하는 일이 생겨서. 준비없이 사랑에 빠지면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게 단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우리들은 아마 크고 작은 이별을 겪고 크고 작은 사랑들을 항상 겪으며 살 것이다. 나조차도 항상 사랑하는 이가 있고, 항상 사랑하는것들이 있으니까. 다만 그렇기에 우리는 항상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 유일하게 준비할 수 있는 것.

 이별을 준비하는 것은 도착지가 이별이라 해도 그리 슬픈 일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평소와 다름없이 좋아하는 책을 읽고, 좋아하는 문장을 나누고, 한 마디 더 좋은 말을 하고, 한 번 더 후회하지 않게 표현하고 이야기하는 것. 그게 내 나름 이별의 준비 과정이니까. 마지막의 순간에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후회하게 되니까. 조금이라도 덜 후회할 수 있게. 천천히 정성스럽게. 


 우리가 사랑했던 순간들이 모두 후회가 되지 않도록 말이야. 


2021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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