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자전거 사고를 당했다.
제목에 쓴 것 처럼 때아닌 입원 일기를 연재하게 됐다. 나는 잔병치레만 잦을 뿐 사실 크게 아픈 이는 아니라, 병이 나서 입원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다들 한 번은 터져 괴로워한다는 맹장도 아직 터져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웃긴 것은 자잘하게 어딜 부딪혀서 다친다는 것이다. 집에서 기지개를 켜다가 벽에 박아 손목이 멍이 든다거나, 길을 걷다가 튀어나온 보도블럭에 항상 걸려 넘어져 무릎이 두 개 다 깨진다거나, 아직 연마하지 못한 낙법을 술에 취한 채 보여주려다가 우스꽝스럽게 자빠지거나. 이렇게 글로 돌이켜 적어보니 내가 우스꽝스러운 짓을 한 것 같긴 하다.
이번 입원은 전혀 예정된 일이 아니었다. 사고라는 게 항상 그렇지. 예정에 없고 예상치 못했으니 사고인 것이다. 그리고 사고라는 건 계획해서는 안 되는 일이니까. 어쨌든.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던 길의 일이다. 평소에도 짧은 거리는 무조건 자전거로! 달리는 사람인데 그날따라 바람이 좀 쌀쌀했고, 아침 공기가 탁했다. 듣던 노래 볼륨은 평소보다 2정도 더 크게 듣고 있었고. 그러다 쾅! 하고 부딪힌 것이다. 나중에 어질어질한 머리를 붙잡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을 때는 어떤 아저씨가(차 주인인 것 같았다) 나를 향해 손을 내밀고 있었고, 병원에 갈까요? 라고 두어 번 묻는 중이었다. 정황상 내가 차에서 사람이 내리는 것을 보지 못했고, 그 아저씨도 내가 옆으로 지나가는 걸 모른 채로 문을 팍 열어젖히면서 내가 나가떨어진 것 같았다.
머리가 핑 돌았다. 더 크게 다치지 않아 다행이지 않은가 싶다가도 뱅뱅 도는 머리를 부여잡고 생각해보면 아니 내가 대체 뭘 잘못했다고 갑자기 이런 일이 생겼지? 하는 생각이 들다가. 우선은 양 귀에 꽂힌 이어폰부터 뽑아야겠다 생각이 들어 그 와중에 이어폰을 뽑았다. 오른쪽 새끼손가락이 욱씬거렸고, 왼쪽 팔꿈치가 쓸렸는지 따가웠다. 더 최악인 것은 일어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일어나려고 자전거를 치우고 힘을 줘 봐도 자꾸 한쪽으로 힘없이 픽픽 쓰러졌다.
계속해서 픽픽 쓰러지는 날 보고 차 주인 아저씨는 날 주워다가 병원에 데려가 줬다. 내가 갑작스러운 사고에도 지금 분노에 차지 않고 글을 적을 수 있는 것은 차 주인 아저씨의 상냥한 대처가 컸다. 사실 사고를 낸 사람들 모두가 이 정도는 해 주어야 맞을 테지만.
병원에서는 사고 접수와 몇 가지 검사, 초음파 및 엑스레이를 촬영한 후에 내 발목에 대한 결론을 내렸다. "발목 힘줄이 끊어졌네." 약간 나른한 인상의 흰 머리 의사가 이야기했다. 병원 시설이 너무 낙후되고 어지러워 솔직한 심정으로는 '제대로 진찰한 거 맞나' 싶은 생각이 들었으나 당장 내 발을 책임지는 중인 사람 코앞에대고 그런 말을 솔직하게 해 봐야 좋을 게 없다는 걸 알아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반깁스를 하는 달달 떨리는 할아버지 의사 선생님의 손을 보면서 내가 더 불안해졌다. 오 제발.. 그냥 처치만 잘 되기를 기도했다.
피곤한 몸과 마음을 질질 끌고 알약 몇 개와 보험접수가 완료되었다는 문자 한 통 전화 한 통을 받고 집으로 향했다.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병원에 다녀오고 나니 더 아픈 것 같았다. 흰 머리가 수북하던 나른한 할아버지 의사 선생님 때문인 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이제 와 따질 수는 없는 일이니.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향했다. 평소같았으면 그냥 걸어서도 15분이면 척척 갔을 길을 40분이 걸리도록 걸어갔다. 걸어가는 내내 이렇게나 미련한 사람은 나뿐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입원은 이틀 후인 오늘에서야 이뤄졌다. 이뤄졌다는 표현도 좀 웃긴 것 같지만. 엄마는 입원하고 싶지 않다는 내게 계속해서 입원하라는 말을 했다. 교통사고가 원래 그래. 후유증이 더 무서운 거야. 엄마 꼭 교통사고가 아니어도 후유증이 제일 무서운 법이야. 앞에 오는 것들보다 뒤에 오는 것들이 더 무섭더라고. 시덥잖은 말을 몇 마디 주고받다가 입원을 위한 짐을 쌌다. 짐은 참 별 거 없었다. 얼마나 있을 지는 몰랐고 속옷 몇 장, 노트북, 아이패드 그리고 휴대폰 충전기와 충전기 두 개 더. 그렇게 챙기고 나니 정말 더 챙길 것이 없는 것이었다. 노트를 챙기려다가 그만두었다. 짐을 괜히 더 늘릴 필요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코로나19가 창궐한 입원실은 휑했다. 입원 전에 전에 진행했던 엑스레이 촬영이나 간단한 진료와 치료를 했다. 그 모든 걸 하기 전에 생애 첫 코로나 검사를 했다. 마음이 불안했다. 실은 전날 간 병원에서 열이 조금 높게 나온다는 말을 들어서일까. 사실 37도면 정상 범위에 속한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왠지 심장이 쿵쿵거렸다. 생애 첫 코로나 검사. 뭐든 처음은 왜 이렇게 긴장되는 걸까. 설령 아니더라도. 만약, 만약의 경우가 머릿속에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코로나 검사는 들은 것보다는 별 거 없었다. 그저 코에 기다란 면봉을 아주 천천히 밀어넣었다. 으악 이제 더는 안돼요!라고 소리지르고 싶어질 때 즈음 잘하셨어요, 하더니 면봉을 천천히 뺐다. 최악의 15초. 2021년 디디 선정 최악의 15초였다. 그리고 검사를 하고 나니 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디 두번다시 경각심 없이 마스크 대충 쓰고 아무데서나 흡연하지 않으리 하는 다짐.
입원 후에는 침을 몇 번 맞고, 병실에 대충 누워서 찌그러져 있다가 부르면 나가고. 방금은 피 검사를 마쳤다. 입원해서 얼마나 지내게 될 지. 이 입원 일기가 얼마나 갈 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첫 날을 무사히 마쳤다. 지루한 하루를 정리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니 조금은 다행이다.
첫 날은 퍽 외롭고 지루한 것 빼고는 단점이 없었으나, 코로나로 인해 갇혀있어야 하고 간간히 오는 친구들의 놀란 안부 인사가 꽤 웃기다. 안부 전화를 어색하게 거는 친구들도 있고, 문자를 하는 친구들도 있다. 그래, 나 괜찮아. 어, 밥 한번 먹자. 또 인사치레처럼 건네는 몇 마디를 마치고 나면 괜시리 피곤하고 미안해졌다. 언제쯤 다같이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내일의 치료를 위해 오늘은 이만 마치고 자야겠다. 다들 교통사고 조심하는 하루를 보내길. 사고 없는 날들이 되길 바라면서.
20210423
입원일기 첫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