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침, 한약, 새 슬리퍼와 어깨 치료.
이틀 차 부터는 병원 생활에 익숙해지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아침 일곱 시 반에 밥이 옴과 동시에 일어났다. 나는 환자인데... 환자는 더 안정을 취해야 하는데 생각하면서도 지금을 놓쳐버리면 밥을 먹을 수 없으니 몸을 일으켜 맛도 없는 밥을 대충 우겨넣었다. 이틀 차의 나는 머리가 조금 떡졌고 하고있던 왼 발의 깁스가 계속해서 거슬리고 불편했다. 뒷발꿈치가 짓무르는 것 같았다. 분명 어제 밤에도 발을 씻고 잤는데도 발에서 냄새가 자꾸 구리구리 올라왔다. 우웩.
아침 밥은 비린 내가 올라오는 조개 미역국과 밥. 중국산 김치와 이상한 향의 김치 그리고 맹숭한 두부전 세 개 정도였다. 몽롱한 정신에 입에 우겨넣느라고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미역국에서 비린내가 너무 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쩌나. 주어진 대로 먹어야지. 아침밥을 먹고 내다놓자마자 발을 닦아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 하기도 전에 잠들었다. 어제 새벽에 너무 늦게 잠든 탓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았을 때 간호사님이 깨워주러 오셨다. 환자분, 치료 받으러 가실게요.
치료는 첫 날에도 받았는데 한방병원인 만큼 침을 놨다. 첫 날 바보처럼 혹시 침을 안 맞을 수는 없을까요, 하고 물었었는데 침을 놔주는 의사 선생님이 "한방병원이니까 아무래도.."라고 하셨다. 최대한 제발 안 아프게 놔 달라고 말하며 부들부들 떨었다. 침을 맞을 때마다 으윽, 윽 하는 소리를 내니 의사선생님이 겁내지 말고 최대한 몸에 힘을 빼고 있으라고 이야기했다. 몸에 힘을 빼면 덜 아픈가요? 그건 아니고, 그냥 너무 긴장하시길래요. 의사선생님이 침을 하나 두개씩 놓을 때 마다 이를 악물었다. 아프진 않고 겁이 나서.
사실 침을 맞는 동안 아프지는 않았지만 괜히 저렇게 가느다랗고 기다란 바늘같은 것이 몸에 슥 들어온다는 것 자체가 기분이 이상했다.
하루에 치료 시간은 두 번이었다. 한 번은 오전, 한 번은 점심 먹고 난 오후. 나는 오전에는 다리 치료를 받고, 오후에는 허리-어깨-꼬리뼈 인근까지 다 치료를 받았는데 오전 치료보다 오후 치료가 더 무서웠다.
허리와 어깨 꼬리뼈 치료를 들어갈 때는 보이지 않아서 더 무섭다. 나는 생각보다 더 겁쟁이라는 걸 매 분 매 초 깨닫는 중이다. 다리에 다는 물리치료기를 똑같이 등과 어깨에도 다는데, 약침과 부항을 놓는다. 첫 날에는 부항을 뜨다가 떨어져서 피가 주륵 흐르기도 했다. 하나도 안 아팠는데 피를 보니까 괜히 쓰라린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
나는 태어나서 '약침'을 처음 맞아봤는데(사실은 침 자체를 처음 맞아보는 것이기는 하다.) 약침을 맞을 때의 기분은 뭐랄까. 평범한 침보다 두꺼운 바늘로 쿡 하고 찔러넣어서 뻐근하게 빡 온다. 나는 약침을 처음 맞아보았기에 그냥 침을 놓는 거랑 똑같지 않을까? 싶었는데 훨씬 뻐근하고 아팠다. 그리고 맞고 난 후에는 뻐근하고 아픈 게 문제가 아니었다. 보통 침을 맞고 나면 간호사님이 침을 샤샤샥 뽑아주는데(정말 표현할 말이 샤샤샥 뿐이다. 아무 느낌없이 순식간에 뽑아준다.) 약침은 뽑아주지를 않는 것이었다. 보통 아무리 샤샥 뽑아도 뽑히는 느낌이 있고 아직 꽂혀있다는 느낌이 있는데. 왜 안뽑아주지? 왜 돌아누우라고 하지? 의문의 연속이었지만 하라는 대로 하고 딱딱하게 굳어 있었더니 의사 선생님이 들어왔다. 환자분 무서우세요? 하고 물으셨다. 아니요. 그런데 혹시... 약침은 안 뽑아 주시나요? 의사 선생님이 껄껄 웃었다. 걱정하셨냐면서. 약침은 따로 꽂아놓는 게 아니라 놓고 바로 푹 찌른다음에 팍 빼버리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다행이다.. 내 등에 침이 박혀있는 게 아니라서.
치료를 오전 오후로 다 받고 나면 하루 종일 할 일이 없다. 강의를 듣다가 입원일기를 위해 그림을 몇 개 그린다. 그리고 어제도 오늘도 보던 영화를 찔끔 보다가 집중이 안 된다는 핑계로 유튜브를 뒤적거리다가 잠든다. 마스크를 낀 채로 자다가는 중간에 깨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는데 하루를 잘 자고 나니까 괜찮다는 걸 알게 됐다. 호흡곤란으로 기절할 일은 없을 것 같다.
오늘은 반 깁스를 한 왼쪽 발이 너무 불편하고 신경쓰여서 의사선생님께 풀어달라고 징징거렸다. 징징거렸다기 보다는 저 괜찮은데 혹시. 풀어주실 수 있을까요. 하고 두 어번 물었다. 그럼 경과를 보고 내일 풀자던 의사 선생님이 못 이기는 척 풀어주셨고, 이제 멀쩡한 슬리퍼 신고 다니시면 되겠네요! 라고 하셨지만 생각해보니 슬리퍼를 한 짝만 신고 반대쪽 슬리퍼를 안 챙겨왔다. 이런. 그래서 결국 엄마한테 애교섞인 목소리로 하나만 사다 달라고 부탁했다. 엄마는 내 전화가 하루에 세 번이 넘어가자 "어 예쁜 딸~"하고 받다가 "왜애!"하고 받기 시작했다. 엄마가 내 엄마라서 너무 고맙다고 두 번 정도 애교를 부렸다.
엄마가 전달해 준 슬리퍼를 신고 아직은 조금 절뚝이지만 발가락 사이사이를 깨끗이 씻기도 하고, 깨끗이 샤워도 했다. 공동 샤워실이라는 거 치곤 하나 뿐이라 조금 불안하기도 했는데, 씻다 보니 괜찮은 것 같다는 기분까지 들었다.
오늘도 어떻게 하루가 지났다. 이제 좀 적응하고 싶다가도 좀 쓸쓸한 기분이 든다. 매일 안고 자던 인형을 가지고 올 걸 그랬다. 내일도 일찍 일어나려면 오늘도 이만 자야할 것 같다. 유치원 때 이후로 이렇게 빨리 자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일기를 적는 내내 생각한다. 매일 비슷할 것 같으면서도 조금씩 다른 것 같다고. 입원일기를 쓰는 내내의 목표가 있다. 자괴감이나 무력감에 빠지지 말기. 하루하루를 대충이라도 기록하기. 오늘은 의욕에 차서 두 번째 일기를 열심히 올렸지만, 내일은 그저 네컷만화만 덜렁 올라올지도. 그러나 읽어주는 여러분이 있어 조금 힘을 내 본다. 다들 좋은 저녁, 밤이 되기를!
20210425
입원일기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