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빔밥 점심. 첫 다리 추나치료.
세 번째 날 아침은 왠지 어제보다 더 피곤했다. 왜지? 일단 어제는 더 늦게 잠들었다. 유튜브는 왠지 봐도 봐도 볼 게 넘치는 느낌이다. 역시 정보화 사회. 라는 생각을 하다가 잔잔한 플레이리스트를 틀어 둔 채로 머쓱하게 잠이 들었다. 혹시 일어났을 때 내 에어팟 한 짝이 없어졌으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을 했지만 고대로 머리통 옆에 빠져있는 걸 보니 아무래도 내 잠버릇이 그리 고약한 편은 아닌 것 같다.
또 밥이 오는 소리에 일어났다. 한국 사람은 역시 밥심이라 이건가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아침 메뉴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아침에는 너무 정신없이 밥을 먹는 것 같다. 항상. 뭘 먹었는 지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루 중에 제일 맛 없는 게 나와서 그럴 지도 모르지만.
아침을 먹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의사선생님이 아침 회진을 돌았다. 어제와 다르게 어디가 아프세요? 오늘은 괜찮아요? 하고 물어보셨는데 분명 잠들기 전에는 여기가 아프고, 여기가 쑤셔요. 하고 기억하던 것들이 싹 사라져버린다. 그냥 아파요.. 하고 바보같은 대답을 두 번 쯤 하고 알겠어요, 이따 봐드릴게요 하고 나가시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마지막으로 다시 잠들었다. 아침 잠과 사랑은 이길 수가 없다.
오전 치료에서는 입원하고 처음으로 다리부분 '추나치료'를 받았다. 정확히 뭔지는 잘 모르는데, 마사지 돌인지 손인지 딱딱하고 둥글고 매끄러운 것으로 다리의 아픈 부분을 사정없이 문지른다. 사정없이 문지르다 보면 내가 진짜 그만하세요 제발! 하는 말이 나오기 직전에 수고하셨습니다~ 하고 멈춘다. 어깨 치료를 받을 때에는 그냥 마사지 같아서 별 생각없이 가볍게 받았는데 다리를 받으니 너무 아파서 소리를 지를 뻔 했다. 그런데 이 치료 과정이 신기한 것은 진짜 치료 후에는 날아갈 정도로 발목이나 다리 컨디션이 좋다는 것이다.
다만 좀 슬픈 것은 치료의 효과는 잠시고, 왠지 치료가 끝나고 한 시간 즘 지나고 나면 몸이 물미역이 된 것 처럼 다시 무거워진다. 흐물흐물해진다. 걸어다니는 내 걸음거리가 뒤에서 보기에 미역같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첫 날 치료를 마치고 나가는 내 뒷모습에 의사 선생님이 걷는 게 너무 불안하고 힘이 없어보이니까 조심하라는 말이 문득문득 떠오른다. 치료를 마치고 나면 지치고 가벼운 느낌이 공존하는데, 시간이 지나면 지친 느낌만 남는다. 내가 정말 교통사고 환자이긴 한가 보다, 하고 다시 느끼는 순간.
나는 병실 안에서 꽤 조용히 하고 있는데 원체 말주변이 좋은 편은 아닌지라 옆 자리의 호랑이띠 이모를 대할 때는 조금 어려웠다. 나쁜 분도 아니고 나한테도 살갑게 이것 저것 많이 챙겨주시는데도 어렵다. 어른들을 살갑게 대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비슷한 나이대의 분들을 바로 이전 직장에서 응대하다 보니 어려워진 걸까 싶다. 너무 서비스적으로만 대답하게 되더라. 나는 주신 것은 남기지 말고 먹어치우자! 라는 신조로 주시는 대로 다 받아먹고 있는데 호랑이띠 이모 한 분 뿐이라 여태까진 괜찮았는데 한꺼번에 할머니 두 분, 이모 한 분이 더 들어왔다. 모두와 인사는 했지만 서먹했는데, 할머니가 식혜부터 오렌지까지 자꾸 뭘 주셔서 저녁 전에 잔뜩 먹었더니 배가 너무 불렀다. 동생이 내가 입원해서 혼자 고립되면 무서울 것 같다고 했을 때 오히려 살 쪄서 올걸? 하고 웃었는데, 왜 그런지 알 것 같았다. 내가 말을 어떻게 하고 행동이 어떻고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냥 내가 어리고 살살웃기만 해도 뭐든 해주시려고 했다. 좋은 분들인 것 같아서 괜히 마음이 따뜻해졌다. 다들 나눠드리고 싶은 데 내가 가진 게 별로 없어 좀 죄송해지기도 했다. 괜한 죄송함.
오늘은 D가 안부 전화가 왔다. D는 전에도 글에 쓴 적 있는 오래 알고 지낸 아는 언니인데, 워낙 막역한 사이라 서로를 이름으로 불러도 아무렇지 않다. D는 내가 입원했다는 글을 보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전화를 했다고 했다. 시간은 오전 11시였지만 여태 잤냐고 대충 타박했다. D는 어딜 어떻게 다친 거냐 부터 시작해서 이래서 바퀴달린 건 다 조심해야 한다는 명언까지 남겼다. 그러고는 나중에 퇴원하면 밥 먹자는 이야기를 마치고 전화를 끊었는데 갑작스럽게 한우 세트 선물을 보냈다. D에게 대체 이런걸 왜 보내냐고 어쨌든 고맙다 잘 먹겠다고 이야기했는데 D는 특유의 아무렇지 않은 태도로 원래 돈을 쓰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야. 라고 이야기했다. D는 매번 이렇긴 했다. 생일에도 축하한다는 말을 툭 던지고 갑자기 십만원짜리 상품권을 턱 보냈다. 마치 뭘 좋아할 지 몰라서 그냥 돈을 보낸다. 이런 느낌으로. 어쨌든 준 건 잘 썼다. 계속해서 머쓱해하는 내게 야 너무 무안해하지말고 앞으로 이런 거 주면 그냥 고맙다 한 마디만 하고 받아서 잘 먹어. 잘 먹는 게 내가 바라는 거야. 응, 그래 고맙다.
이것저것 많이 한 날이었다. 연대책임의 세 번째 화상 회의도 했다. 곧 SNS에도 첫 게시물을 올릴 수 있을 것 같다. 무슨 일을 하면서 재밌다 더 하고싶다라고 생각한 적이 단 한 순간도 없는데 연대책임과의 공동 작업, 프로젝트 진행은 뭐든 재밌다. 아직 내가 스물 넷이라서 그렇다는 조조의 한마디도 재밌다. 다음에는 코로나 단계가 격상되지 않는 선에서 왠만하면 오프라인에서 회의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어떻게 오늘 하루도 끝났다. 아 그리고 이제와 깨달은 건데 베스트 메뉴였던 비빔밥에 대해 쓰지를 않았네. 오늘 점심에 나온 비빔밥은 너무 맛있었다. 그래서 한 그릇을 싹싹 다 먹었다. 밥을 이렇게 다 먹은 건 병원에 와서 첫날 저녁 이후로 처음이었다. 첫날 저녁에는 뭔가 간절했다. 이걸 먹지 않으면 앞으로 아무것도 먹을 수 없을 거라는 공포감에 먹은 저녁. 그 때는 간식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젠 두둑해진 간식 서랍을 보며 대충 먹고 간식을 쫌쫌 챙겨먹는다. 고루고루 잘 먹으라고 했지만 병원 밥이 거기서 거기라 맛이 없는걸.
간식 서랍에는 지금 이것저것 많이 들어있다. 내 생각엔 일주일 안에는 다 못먹을 것 같다. 카라멜, 누룽지, 예감(치즈맛), 빈츠 몇 개, 에이스 크래커 먹다 남은 것 등등. 야채 주스 여섯 개 까지. 간식과 디디의 건강을 위해 애써주신 모두에게 작은 감사를 보낸다. 대부분의 것은 어머니가 사다 주신 거지만.
내일 맞을 침은 별로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래 앉아있으니 등이 저리다. 이만 줄여야지.
다들 일찍 주무시고 일찍 일어나시길.
20210426
입원일기(3)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