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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 Aug 19. 2019

일찍 일어났다.

 일찍 일어났다. 새벽녘이었다. 장마도 지나가고 더운 공기도 스멀스멀 기어올라오지만 나는 한 순간도 여름이구나! 하고 확정적으로 느낀 적이 없었다. 그런데 낯선 새벽녘의 후덥지근한 공기가 한 순간에 '여름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푸르게 내려앉은 새벽 공기에 평소보다 일찍 떠오른 붉은 햇빛이 겹쳤다. 어릴적에 눈에 대며 친구를 놀리던 3D안경이 생각났다. 파랗고 빨갛던 안경. 그 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면 보랏빛으로 보이려나?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지만. 푸른 공기에 미묘하게 겹쳐 보이는 붉은빛이 예뻤다. 여름의 새벽녘은 덥구나. 나는 아침에 하는 일을 새로 시작해서, 더 이상 게으름부리거나 늦게 일어날 수가 없었다. 새 일이라고 해 봐야 매번 하던 카페 일일 뿐이었다. 조금 다른 것은 일하던 곳과 백 걸음도 안 되는 가까운 곳이라는 것. 그리고 삼 년째 일하던 스터디카페를 그만두었다는 것. 

 

 삼 년이라고는 해도 허물없이 지나간 시간이었다. 어떤 때는 주중 5일을 일곱 시간 씩 일하기도 했고, 어떤 때는 주말에만 간간히 일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시간과 경험이 쌓였다. 어디가서 경력이라 내놓기엔 부끄러웠지만 경험이었다. 살면서 하는 모든 일들이. 

 여기를 그만두는 것은 두 번째였다. 첫 번째로 그만 둘 때는 언제든지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었고, 실제로 그랬다. 언제든 돌아와도 된다는 사장님의 말,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격려. 그래서 그만두는 날에도 슬프지 않았었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정식으로 퇴직합의서를 쓰고 사장님과 악수를 하고 나자 눈물이 왈칵 날 것 같았다. 이별은 겪을 수록 성숙해진다던데, 나는 이별 앞에서는 아직 여섯 살 짜리 어린아이처럼 굴었다. 지나고 난 모든 것들이 아쉬웠다.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하는 마음이 들었다. 앞으로는 이 마음을 그대로 가지고 살아야지. 더 잘 할 수 있었으니, 더 잘해야지 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장마가 끝나도 후덥지근했는데 이제보니 날씨가 선선하다. 모르는 새 가을이다. 또 언제쯤 진짜 가을이네, 하는 생각이 들까. 새로운 계절을 기다리게 되는 것은 몇 년이 지나도 아직 똑같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 만큼이나 설레는 일인 것 같아. 

 그만둔 것을 후회하지 않고, 그만둘 것을 걱정하지 말고 앞으로도 살 생각이다. 내게 주어진 순간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 행복할 수 있으니까. 


2019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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