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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 Apr 04. 2020

지하철

어른이 된 거 같아

 별 거 아닌 일에 어른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스무 살 스물 한 살이 지나고, 어떻게 지냈는지 잘 모르겠는 일 년이 또 지나고 스물 세 살이 되어서야.



 요 근래 새로운 직장에 대해 생각하고 새로운 직장을 고민하고 다양한 장소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피로도가 쌓여왔다. 당연히 감수해야 될 피로감이었지만 피로감 뿐만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쌓여가는 부채감과 부담감이 나를 짓눌렀다.

 사람들은 내가 뭐든 할 수 있는 나이라고 이야기하고, 뭐든 할 수 있을거라고 찬사를 보낸다. 그리고 나도 모르는 새에 그것이 나를 몰아넣는 무기가 된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나이인데, 왜 아무것도 못 해?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반대로 아무것도 안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나는 스무 살 때부터 지금까지 쉬지않고 무언가를 끊임없이 해 왔고, 솔직히 말해서 지쳤다. 너무 지쳐서 지쳤다는 말을 하기가 지겨울 정도로. 혼자 해냈던 여행만으로는 더 이상 버티고 설 수 없을 정도로.


 뭘 이루었느냐, 무엇을 명확히 해냈느냐 물으면 할 말이 없다. 나는 그저 열심히 살았다. 답답하지 않을 정도로만 열심히. 아침에 졸린 눈을 비비며 모두가 깨어나지도 않은 시간에 집을 나서거나, 남들은 해본 적 없는 일을 꾸준히 해가면서. 그런데도 나는 아직 이루어낸 게 없다.이번 주만 해도 두 개의 회사에서 불합격 통보를 주었고, 저번 주 까지 합치면 열 개가 넘는 회사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오늘까지 연락을 준다고 했던 회사에서 연락이 오지 않은 것 까지 열 한 번이다.

 수많은 당락의 앞에서도 배우는 것은 있다. 나는 포기나 실패에 의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것. 혼자 잘 해낼 수 있을 줄 알았던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 당락에 기울어지지 않고 일어서리라 확신했는데 생각보다 더 많은 힘이 든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음 면접으로 갈 열차를 기다린다. 또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의 이름을 치고, 위치를 찾는다. 길을 찾아 가는 것은 언제나 내게 복잡한 일이다.

 인생도 다 그렇구나 싶다. 길이 보이지도 않고 복잡하고 언제가 될지 가늠할 수 없게 하지만, 언제나 배우는 것이 있고 알게 되는 것들이 생긴다는 것이 비슷하다. 그리고 뜬금없는 봄날 오후에 갑자기 어른이 된다.


 오늘도 무엇이 나아졌는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를 끊임없이 생각한다. 나는 죽기 직전까지도 이 생각을 하며 살 것이다. 그러다가 눈 감기 직전에야 ‘와 나 진짜 어른이 됐나 봐.’ 하고 눈 감을 지도 모른다.


2020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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