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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 Jun 17. 2020

편지

<크래커 - 버스 > 를 들으며,


 해가 저무는 강가에서 당신 생각을 할 때면, 우리가 함께했던 날들이 떠오르고는 합니다. 그것은 머물 곳 없는 그리움이지만 당신에게 닿아서는 안 되며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되는 그리움입니다. 그대는 아실까요? 내가 하루가 저물 때 쯤 그대 생각을 꼭 꼭 챙겨 한다는 것을요. 어제와 같은 것을 떠올리기도 하고, 어제와 다른 것을 떠올리기도 하지만 언제나 같은 것은 그대가 내 기억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어제는 함께 이 강가에서 노을을 바라보던 날을 떠올렸습니다. 반짝이는 수면을 바라보며 그대 어깨에 기대어 살짝 눈을 감고 순간이 영원하길 바라는 뻔한 소망을 꿈꾸었던 날이요. 수많은 날들 중 언제냐고 물어올 당신에게, 하루이기도 하고 여러 날이기도 했다고 대답할 거에요. 


 그대 손을 쥘 때면 숨이 벅차올랐습니다. 숨을 너무 많이 들이마셔서 이러다 뻥 하고 터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얼굴은 상기되고 이마에서는 땀이 흐르고, 꼴깍 하는 침 넘어가는 소리가 귓가에 울렸습니다. 매 번 손을 잡을 때면 나는 과하게 긴장했습니다. 당신 앞에서는 언제나 사춘기 아이같은 모습으로. 때로는 너무 과장하고, 때로는 너무 소극적이고 , 적극적이고, 낯을 가리다가 가리지 않다가. 모든 순간이 보통의 사랑이었습니다. 아주 보통의 사랑. 끝까지 한결같지는 않았지만 말이에요. 


 우리의 사랑이 무르익을 때 나는 당신을 신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전만큼 달뜨거나 과하게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뭐랄까요. 그 순간부터 우리의 사랑은 당연한 일이 되었습니다. 일상처럼. 하루를 끝내면 타고 집에 돌아가야 하는 버스처럼. 도착해야 하는 집 같은 너무 안정적인 연애는 아니었지만 적당히 덜컹거리는 버스같은 사랑. 버스는 적어도 정해진 노선을 벗어나지는 않았으니까요. 나와 당신이 영원할 거라고 생각한 것도 그때 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나는 버스에 타고 있는 시간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의 사랑은 버스처럼 정해진 시간에 모든것이 완벽하게 발생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실 우리의 사랑은 버스가 아니라 버스 안에 탄 우리 둘이 해나가는 것이었으니까요. 덜컹이면 서로를 잡아주고 같은 곳에서 내리고 여느때와 다름없는 길을 걷다가 헤어지는 것. 그것이 우리의 사랑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나 오늘은 여기서 내릴게. 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우리의 마지막이었습니다. 버스 문이 닫히기 직전 사라진 당신의 뒷모습을 나는 잡지도 못하고, 따라 내릴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다음 정류장에서 급하게 내려 당신을 찾으려 해 보았지만. 그 때 따라 가 보아야 어디로 갔는 지. 알 수는 없었기에. 돌아가 보아도 당신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으니까. 


 왜였을까요? 내릴 거라면 내리기 전에 이야기 해 주지. 도망치듯 달아난 당신의 뒷모습이, 나의 손을 쳐내던 행동이, 이제 내릴 거라던 말이. 내리기 전의 신호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그런데, 알았더라도 내가 막을 수 있었을까요? 당신의 끝. 마지막을. 더이상 우리의 여정은 함께가 아니라는 그 모든 신호들을. 


 그래도 나는 당신을 아직은 그리워합니다. 부질없는 것일지라도 함께했던 모든 것을 되짚어봅니다. 평범하고 일상적이었던 보통의 사랑을. 사실 나에게는 특별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보통의 일상이었을 순간들을. 당신이 돌아오길 바라지 않고, 나또한 이제는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그모든 순간이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아름다웠기만을 바랍니다. 


 이제 나는 여행을 다니기에는 너무 지쳤기에, 가만히 기다립니다. 또 모르죠. 나를 부르는 누군가가 있고, 나를 잡아주는 누군가 있다면 다시 여행을 떠날지도요. 그렇지만 지금은 더 쉬려고 합니다. 지나가는 차들을 보고 계절이 바뀌는 풍경을 체감하고, 시끄러운 날들을 추억하면서. 


당신도 잘 지내길 바랍니다. 정말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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