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소듕해
작년 말 4년 간 다녔던 회사를 그만뒀다. 남아 있으라는, 혹은 이직할 곳을 구하고 나가라는 어른들의 말을 뒤로 한 채. 무작정 그만뒀다고 하기에는 꽤 오랜시간 고민한 끝에 결정한 것이었지만 넥스트 스텝을 생각 않은 탓에 예상보다 긴 공백을 가지게 됐다. (역시 어른이 하시는 말씀 틀린 거 하나 없다고... 갑자기 소속이 없어지면 힘들거라고 하셨는데 정확히 그랬다)
긴 공백기간 동안 내 커리어에 대한 고민과 함께 4년 간의 직장생활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면접 보러 가서 처음 마주한 사무실 풍경, 합격 통보를 받고 너무 설레서 다시 찾아가본 회사 전경, 막내생활이 힘들었던 나에게 진심으로 다가와준 팀장님의 얼굴, 맡은 프로젝트가 잘 마무리 되어서 처음으로 받은 대표님의 칭찬, 대리 직급을 받은 날 자축하며 먹은 식사까지. 그 중에서도 첫 월급을 받던 때가 많이 떠올랐다.
월급통장에 한 줄이 찍혔다. 136만 원.
지금은 최저임금이 올라서 신입사원은 이보다 더 많이 받을테고 객관적으로도 적은 돈이었지만 23살의 난 경제관념이 참 없었다. 그 흔한 알바나 인턴도 해본적이 없는, 사회경험이 전무한 쌩 초짜였고 100만 원이 넘는 돈을 내 손으로 벌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너무 기뻐서 첫 월급이 들어왔을 때 엄마와 통화를 했다.
나: 엄마!! 나 월급 받았다~
엄마: 수고했어, 우리 딸.
나: 원래 첫 월급 받으면 부모님 내복 사주는 거라고 하던데?
엄마: 내복은 무슨 ㅋㅋㅋㅋ 필요 없어.
나: 그럼 용돈 줄게!
그렇게 엄마와 아빠, 동생에게 각각 용돈을 쏘고 수고했다는 의미로 스스로에게 구두 한 켤레를 선물했다. 이대 앞 보세에서 3만 8,000원을 주고 산 검은 색 하이힐. 그때만 해도 1-2만 원이 넘는 신발을 사본 건 처음이었다. 나름의 사치였다.
내 월급이 쥐꼬리라는 걸 알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원룸 월세를 내면 이미 월급의 1/3이 날아갔고 공과금 등을 내고 나면 남는 게 없었다. 근무시간이 긴 회사여서 아침, 점심, 저녁 식비를 아낄 순 있었지만 아무리 아끼고 아껴도 모을 수 있는 돈이 없었다. 매일같이 야근을 하고 심지어 주말까지 출근을 해야 했지만 내 손에 잡히는 돈이 없었다.
입사한지 1년이 지나고 첫 연봉협상을 한 날, 눈물이 났다. 그제서야 안 거다. 이 돈으로 서울에서 생활하는게 너무 힘들다는 걸. 인상된 월급 가지고도 턱 없이 부족하다는 걸.
지금 난 첫 월급과 비교하면 2배를 번다. 꽤 많은 돈을 저축할 수 있고 조금 더 좋은 음식을, 종종 4만 원짜리 신발을 살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물정을 알고 나니 여전히 부족한 돈이다. 전세금 모으려면 2~3배는 모아야 하고 언제 전세금을 모아서 언제 내집마련을 할 수 있을까 싶다.
얼마를 벌어야 136만 원을 받았을 때의 기분을 느낄 수 있을까?
난 그 나이대에 해볼 수 있는 경험을 해보는 게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물었다. 클럽 가는거? 3대 3 미팅? 그런 경험이냐고.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아니다. 점차 나이가 들면서 마주하는 상황 속에서 느끼는 감정이라고 답하고 싶다.
인생 선배 한 분이 이런 얘길 하셨다. "젊었을 때 좋은 것만 누리고 나면 인생이 재미가 없어." 매번 비싼 음식만 먹는다면 좋은 음식에도 감흥이 없어지고 여행갈 때마다 비싼 호텔에서만 묵는다면 당연한 게 될거라고.
똑같은 얘기는 아니지만... 더이상 첫 월급을 받았을 때의 기쁨을 느끼기 힘들 것 같다. 23살의 사회초년생이 아니까. 그때처럼 출근이 두근거리고 야근마저도 뜻 깊고 돈을 버는 경험 자체가 행복할 수 없다. 뭐, 그래서도 안되고.
다만 앞으로의 내 삶이 기다려진다. 계속 경력을 쌓아올려서 지금보다 더 돈을 모을 수 있게 되고 원룸을 벗어나 투룸으로 이사도 갈 수 있을거다. 조금 더 정신적으로 안정감 있는 사람이 될 거고, 여유도 생기겠지. 나쁜 일을 겪더라도 28살의 나보다는 단단하게 버틸거다. 아, 그때쯤이면 글도 더 잘 썼으면 좋겠다.
"김 대리님은 행복지수가 높아보여요."라는 직장동료의 말이 떠올랐다. 맞다. 난 비교적 행복하다고 느끼는 편이다. 앞으로 더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