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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링귄 Oct 30. 2020

도를 아십니까, 영화 <미드소마>를 보고

벼랑 끝에 선 사람에게

*짧지만 영화 <미드소마>의 줄거리와 결말이 포함돼 있습니다. 스포를 피하시려면 영화를 먼저 보신 후 글을 읽어주세요.


2019년에 관람한 개봉작 중 가장 인상 깊게 본 영화를 꼽으라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토드 필립스 감독의 <조커>, 그리고 아리 에스터 감독의 <미드소마>다. 그 중에서도 오늘은 <미드소마>라는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개봉한지 오래된 영화를 뒤늦게 리뷰하려는 게 아니다. 영화 평론을 할 만큼 조예가 깊지 않아서 리뷰 글을 만들기도 어렵고. 영화 <미드소마>가 말하는 삐뚤어진 공감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작년 말에 난 생각지도 못한 일을 겪었다. 평상시의 나라면 절대 상상할 수 없는 행동들이다. 당시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여러가지 겹치면서 불안정한 상태였다. 오랜 기간 다녔던 회사를 그만두게 된 시점에 1억 원이 훌쩍 넘는 전세금을 돌려 받지 못해 소송을 진행하는 등 악재가 겹쳤다. 말도 못 하게 참 많이 힘들었다. 집주인과 통화를 하다가 서울 도심 한복판에 앉아 펑펑 눈물을 쏟기도 할 만큼 나약한 상태였다. 


원래의 나였으면 친구들에게 조잘조잘 얘기했을텐데 오히려 큰 일이 벌어지니까 가까운 사람에게 자세히 말하기 힘들었다. 내가 너무 힘든데 듣는 사람도 괴롭겠다 싶어서 그랬다. 전세금을 빌려주신 부모님께도 미안했고 거리도 먼데 이미 걱정을 끼친 상태라 힘든 상황을 최대한 숨기려고 했다. 그래서 더 힘들었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친구의 소개로 한 언니를 소개 받았다. 상담 일을 한다는 그 언니는 밝은 성격에 차분하게 내 이야기를 들어줬다. 처음부터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어디선가 본 듯한, 들은 듯한 상황. 하지만 누군가와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됐고 자주 만나게 됐다. 일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대화하는 수준이라 부담감이 크게 없었다. 초반에는. 잘 알지도 못하는 그 언니는 나의 힘든 사정에 대해 공감해주고 응원했다. 생판 남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리액션이었지만 그 순간에는 시끄러운 속이 잠시 가라앉는 기분을 느꼈다.


만남이 잦아지자 그 언니는 성경책을 선물하며 하루가 끝날 때 기도를 하라고 조언했다. 기도라니... 고등학생 때 시험 전에나 하던 기도를? 저녁에 잠이 들기 전, 하루동안의 감사했던 일들을 떠올리고 감사기도를 하라고 했다. 물론 그 말만 들었을 때는 나쁜 의도로 들리지 않았다. 가장 친한 친구가 독실한 기독교인이고 주변에도 식사를 하기 전에 기도를 하는 사람도 많다. 


그래도 나는 무교다. 살면서 단 한번도 종교를 가진 적이 없다. 할머니를 따라 딱 한번 절에 가서 스님께 차를 얻어 마셔본 것 외에는 종교시설도 찾아가본 적이 없다. 유신론자, 무신론자를 떠나서 종교가 없는 것도 존중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 성경공부를 하자며 '예수'나 '아멘'이란 단어를 말하다니. 귀에 들어올리가 없었다. 웃긴 건 거부감이 드는데도 언니와 만났다. 그때의 난 '아무나'라도 대화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믿지도 않는 종교를 믿는 척 이야기를 들었다. 결국 더이상 안되겠다고 생각한 건 전도사님이라는 사람을 소개하면서다. 


기독교인 친구에게 사실대로 털어놨다. 친구가 깜짝 놀랐다. 어릴 때 친구가 교회에 놀러가자고 해도 가본 적이 없던 내가 그런 일을 겪었다는 게 가장 놀라워했다. 그렇게나 힘들었냐며 깊게 발 담그지 않았으니 이젠 만나지 말라고 충고했다. 친구와의 통화를 마치고 한참을 울었다. 스스로가 너무 바보 같이 느껴졌다. 미디어에서나 보던 일인데 그럴때마다 속아서 빠진 사람이 순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약해진 마음은 사람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든다는 걸 알게 됐다. 


몇 달 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 유행처럼 번지고 특히 대구 신천지 사건으로 크게 확산되자 많은 언론매체들이 신천지 집단을 조명했다. 신천지에 몸을 담그게 되는 과정을 다룬 한 방송을 보다가 불현듯 '나도 그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전도사님을 소개시켜준 곳의 주소를 검색창에 쳐봤더니 어느 블로거가 신천지가 활동하는 장소 중 하나로 나왔다. 어떤 단체인지는 몰라도 큰일날 뻔한 사건이라는 점은 분명했다.





이 일을 겪은 후에 다시 한번 영화 <미드소마>를 감독판으로 관람했다. 더 많은 것들이 보였다. 극중 주인공 대니의 나약해진 마음에 다가오는 호르가 마을 사람들의 의도 섞인 친절. 그리고 결말로까지 가는 과정들. 허투루 지나칠 부분이 없었다. 인상적이었던 몇 장면만 얘기해 보자면.


# 주인공 대니와 친구들이 호르가 마을을 찾아가자 큰 환영을 받는 장면.

사실은 사이비 집단이 마을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호르가는 외부인이 오자 크게 반긴다. 전통의상과 잘 곳을 내어주며 친절하게 웃는다. 아름다운 마을에서 사는 사람들의 친절에 주인공들은 의심을 하지 않는다. 그들과 섞여서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잔다. 


'도를 아십니까'를 외치는 사람들을 떠올리면 나이와 상관 없이 배낭에다 유행에 맞지 않는 옷들을 입을거라고 생각했다. 유튜브를 보면 항상 그러했고 실제로 길에서 말 거는 사람들이 그렇게 입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정작 내가 만난 언니는 홍대나 신사에서나 볼 법하게 오히려 '힙'했다. 예쁘게 화장하고 좋은 옷을 입고 있었다. 


유튜브 영상에서 본대로 그 언니가 화려하지 않고 화장기 없이 수수하고 등산복을 입고 있었다면 난 의심했을까? 글쎄, 다른 건 몰라도 대니와 친구들의 상황에서 비춰보면 밝고 아름다운 곳이 아닌 공포영화처럼 어둡고 칙칙한 곳을 가게 됐을 때는 본능적으로 경계하게 됐을거라고 생각한다.


# 마을의 전통 의식이라며 두 노인이 스스로 절벽에서 떨어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들.

호르가 마을에서 처음으로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한다. 극중 호르가 마을에서는 72세 이상이 되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전통이 있다. 마을의 손님들은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도 못한 채 절벽 앞에 선 노인 두 명을 바라본다. 이상한 소리를 지르고 할머니가 떨어져 죽는다. 대니와 친구들 모두 충격을 받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아랑곳 않고 그 장면을 본다. 곧이어 할아버지도 절벽에서 떨어지지만 즉사하지 못해 고통스러워하고 이에 호르가 주민들은 함께 고통의 소리를 낸다. 그리고 망치로 고통으로 일그러진 할아버지의 머리를 깨 부순다. 


아무리 마을 전통이라고 하지만 누가봐도 비상식적인 장면이기 때문에 손님으로 온 한 커플은 화를 내며 마을을 떠나기로 결정한다. 대니와 친구들은 그 상황에서 다른 선택을 한다. 마을에 계속 남기로 한 것. 제정신의 사람이라면 어떻게 저 광경을 보고도 마을에 머물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사기를 당하거나, 사이비에 빠지거나, 다단계에 발을 담그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분명 중간에 이상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을 거다. 그 순간은 절대 사소하지 않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은 멍청하다고 비난할 수 있지만 당사자는 '나에게 설마 나쁜 일이 벌어지겠어'하며 엇나간 믿음으로 상황을 정정하려고 하지 않게 된다. 



# 대니가 남자친구로부터 배신을 당하고 슬퍼하자 함께 울어주는 마을 사람들.

대니는 남자친구 크리스티안에게 기대려고 하지만 크리스티안은 그런 대니가 부담스럽기만 하다. 대니의 심적 고통을 공감해주지 못 하고 오히려 곁을 떠나고 싶어한다. 대니도 그걸 알면서도 자신에게는 크리스티안만 남았다고 생각하며 매달리듯 연인관계를 유지 중이다. 


그러다 마을의 젊은 여자와 크리스티안의 성관계 장면을 대니가 목격하게 된다. 충격에 울부짖는 대니 주변으로 마을 여자들이 모여들고 함께 엉엉 운다. 아마 남자친구에게조차 외면 받았던 자신의 마음을 보듬어주는 것처럼 느꼈을거다. 그게 비록 의도를 가지고 있고 허울 뿐인 공감일지라도 당장 대니에겐 필요했을 테니까. 결국 대니는 크리스티안의 죽음을 선택하며 마을의 일원이 된다.


대니의 선택이 납득이 갔다. 가족을 모두 잃고 심적으로 무너져 내려있던 자신에게 가족이 되어준다는 사람들을 마다할 수 있을까. 이미 크리스티안과의 관계는 끝을 향해 가고 심지어 다른 여자와 있는 남자친구를 보게 되면서 마지막까지 잡고 있던 이성의 끈이 끊겼을지도 모르겠다. 말이 안되고 정상적이지 않은 마을전통이라는 걸 알더라도 뿌리치기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자살을 결심하는 사람들은 루저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제대로 살 자신이 없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람으로 보인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많은 사람들이 '내 인생 바닥이야'라고 말하는 순간이 있다. 그 바닥이라는 건 개인의 기준이기 때문에 남들이 보기엔 별일이 아닐 수도 있지만 당사자가 느끼는 절망과 상심의 크기를 함부로 예단할 수 없는 것.


몇 년 전에 모 대기업에서 따돌림을 겪은 직원이 자살하는 사건이 있었다. 굉장히 스펙도 좋고 젊은 직원이었기 때문에 남이 보기엔 '차라리 그만두지 왜 죽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순간 그 직원은 세상에 혼자만 있다는 생각을 했을거라고 생각한다. 만약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진심으로 공감해주고 조언해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극단적인 선택을 막을 수도 있지 않을까.


혹시나라도 벼랑 끝에 서 있는 사람을 만난다면 무신경하게 지나치지 않았으면 한다. 공감해주는 것만으로도 순간의 나쁜 선택을 막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스스로가 벼랑 끝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잠시 주변을 둘러보면 좋겠다. 괜찮은 척보다는 차라리 소리를 지르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잠시 구렁텅이에 빠진 것 뿐인 자신을 아끼는 사람은 분명 있으니까.


talk about the good times and the bad times
you gotta be able to
blend both of those in your life
-윤미래, <검은행복>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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