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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링귄 Jul 30. 2023

올데이 웨딩, 긴 하루였지만

누군가의 결혼식 아이디어가 되길

지난 4월 짧게 비가 내린 어느 날, 나는 결혼을 했다.

장소는 서울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맥주 펍.


나와 남편은 그곳에서 올데이 웨딩을 했다.


https://brunch.co.kr/@sosohappy-you/41


올데이 웨딩을 택하고서 가장 큰 고민은 콘텐츠였다. 2부에 오는 손님들은 예식도 못 보는데 식사만 대접하고 보내기는 허전했다. 2부는 오후 3시부터 9시까지 6시간 정도 되는 시간이라 즐길거리가 절실히 필요했다. 문제는 올데이 웨딩이라는 말을 남편한테서 듣기 전까진 들어본 적도 없었다. 레퍼런스 삼을 경험이 전무한 상태. 올데이 웨딩을 말한 남편에게 물어봤지만 이렇다할 답은 듣기 힘들었다. 홈파티와는 애초에 다른데 형식으로 할 수 밖에 없었으니까.


무작정 인터넷에 찾아봤다. 몇 가지 재미있는 레퍼런스가 있었는데 한국에서는 다소 어려울 것 같았다. 예를 들면, 유럽 어느 부부가 한 결혼식이다. 하객에게 패브릭을 청첩장과 함께 나눠준다. 그 패브릭을 이용해서 각자 헤어핀, 가방, 스카프, 티셔츠 등을 제작해서 하객들이 결혼식에 참석했다. 마치 드레스코드 마냥. 흥미롭긴 했지만 하객들에게 숙제를 내주는 이미지라 포기.


여러 레퍼런스를 찾아봤지만 마땅한 사례를 찾기란 어려웠고 그나마 하객들도 즐길 수 있으면서도 진행이 수월한 것들로만 진행했다. 이벤트가 다 결정되고서 청첩장에도 안내했다.

내 아내가 될 사람을, 내 남편이 될 사람을,
소중한 사람들에게 소개하고자 올데이 웨딩을 선택했습니다.

오후 3시부터 8시까지(closed 9시) 신랑 신부가 손님을 맞습니다. 
편하신 시간에 오셔서 준비된 술과 음식을 즐겨 주세요.

< 주요 이벤트 >
포토부스 설치 : 인생세컷 촬영 가능
오후 4시 & 7시 - 경품 추첨 행사 (현장 진행)
오후 5시 30분 - 축가 & 축무

결혼식 당일.


오후 2시쯤 1부가 끝나고 친척들과 작별인사를 다 마치고 잠시 브레이크 타임을 가졌다. 2부 드레스로 갈아입고 양가 부모님도 식사를 제대로 못하셔서 식사를 했다. 다행히 1부 예식할때 장대처럼 쏟아지던 비는 거짓말처럼 그쳤다. 그렇게 30분 정도 쉬었을까. 2부 손님들이 찾아오셨다. 정신 없이 나와 남편은 손님들을 맞았다. 

결혼식에 와준 하객들. 감사합니다.


이벤트 1. 포토부스

같이 온 하객들이 따로 찍기도 하고, 우리와도 여러 컷 촬영했다.

2부에서도 포토부스를 설치해 뒀다. 보통 하객들은 그룹으로 와서 같이 온 가족이나 친구끼리 찍도록 했다. 그 이후에 신랑신부도 함께 찍었다. 그렇게 다들 2~3장씩 받아서 갔다. 하객이 중앙에 서도록 했다. 우리 결혼식을 찾아와준 하객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었다. 모든 하객들이 사진 촬영 후에 정성껏 축하 메시지도 남겨주셔서 감사했다.


파티 분위기에 맞춰서 배경을 화려한 골드로 택한 것도 탁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2부 의상을 블랙으로 갈아 입어서 더욱 잘 어울렸다. 결혼식에 초청할때 하객들에게 안내한 사항이 있었다.


편한 옷을 입고 편하게 즐기다가 가세요.


블랙 드레스를 입은 이유 중 하나였다. '민폐하객룩' 이라고 불리는 흰 옷, 튀는 옷, 편한 옷과 상관 없이 어우러질 수 있는 컬러. 하객들과 섞여 있어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컬러라서. 물론 검정 드레스가 찰떡 같이 어울린 것도 이유였지만. 실제로 하객들은 다양한 룩으로 왔다. 정말 포멀하게 온 사람도 있었고, 아디다스 저지나 후드 티를 입고 온 하객도 있었다. 남편은 검정색 셔츠와 바지를 입업고, 나는 블랙 드레스를 입은 후에 저녁에는 청자켓을 걸쳤다. 편안한 분위기와 우리의 룩이 너무 맘에 들었다.

2부 우리들의 룩. 웨딩 디렉터가 꽃 장식도 예쁘게 해줬다.


이벤트 2. 럭키드로우

하객들에게 선물할 만한 것이 있을지 고민하다가 경품추첨 이벤트를 선택했다. 이벤트는 오후 4시와 7시, 총 2번에 걸쳐 진행했다. 이벤트 시간에 착석해 있는 하객들에게 경품 추첨용 번호표를 하나씩 나눠줬다. 아기와 함께 오신 분들도 있었고, 우리와는 일면식 없지만 하객의 친구들도 있었다.(혼자 오는 하객들은 뻘쭘할 수 있는 분위기라서 찐친과 놀러오라고 안내했다) 아기에게도, 모르는 하객 지인들에게도 골고루 나눠줬다. 

두구두구두- 추첨볼에 있는 번호 중 하나를 뽑아서 불렀다. 당첨된 지인들은 폴짝 폴짝 뛰며 앞으로 나왔다. 차례대로 선물을 고를 수 있도록 했는데 대신 본인이 신랑 또는 신부와 어떤 관계인지, 간단히 한 마디를 하고 받아갔다. 신부 전 직장동료, 신랑의 맥주 모임 지인 아내, 신부 고등학교 친구, 신랑 직장동료의 어린 아들까지. 다들 한 마디씩 잘 살아라고 인사도 해주셨다.

경품 이벤트 선물을 선정하는게 참 어려웠다. 처음에는 애주가인 남편의 애장 술을 상품으로 걸 생각이었다. 하지만 술을 안 마시는 손님을 위해서 다양하게 하자는 의견을 냈다. 결국 써보고 좋았던 것들 위주로 상품을 선정했다. 예를 들면 우리가 데이트 때 자주 갔던 카페에서 판매하는 커피 드립백(심지어 커피 드립백을 구매한 카페 사장님도 참석해주셨다. 정말 자주 간 덕에 인연이 된 분들이었다. 사장님께서 해당 원두에 대해 설명도 해주셨다), 남편 지인이 론칭한 브랜드라서 사용했는데 정말 좋아서 꾸준히 사용하고 있는 룸 스프레이, 그리고 결혼식을 한 식당 상품권 등등. 다양하게 준비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이벤트 3. 축가와 축무

축가해준 친구도, 축무 도와주신 선생님들도 감사합니다.

축제에서 빠질 수 없는 노래와 춤. 1부에 이어서 2부에서도 이어졌다. 2부의 축가는 지인이 해줬다. 내가 서울에서 처음 얻었던 직장에서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전 직장동료다. 퇴사한지가 서로 4~5년 가까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퇴사자들끼리 친하고, 이 지인과는 2살 차이지만 그냥 절친처럼 말 놓고 지낼 만큼 친한 친구다. 선뜻 축가를 해주겠다고 해서 참 감사했는데 너무 잘해버려서 놀랐다. 원래 노래를 잘 부르는 친구인데 내 결혼식 축가라고 열심히 연습한 티가 났다. 김동률의 <감사>라는 곡을 불렀다. 꽤 어려운 곡인데. 일반인이 축가하는 거 별로인 것 같다고 했던 남편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던.


1부와 똑같은 곡으로 2부에서도 신부가 축무를 했다. 아이브의 <After Like>, 뉴진스의 <Hype Boy>, 도자캣의 <Kiss me more>까지 총 3곡이었다. 원래도 취미로 K-pop 안무를 배우곤 해서 연습하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춘 적이... 대학교 행사 때 이후론 처음인 것 같은데. 꽤 떨릴 줄 알았는데 즐거웠다. 실수한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니고 즐거우면 그만이니까. 


결혼식 마지막 손님들. 이 편안하고 즐거웠던 분위기는 잊지 못할 것 같다.

식 막바지는 더 편안한 분위기였다. 모든 이벤트가 끝났고 밖은 어둑어둑하고 하객들 대부분 술 한잔씩 해서 그랬던 것 같다. 심지어 가장 원했던 그림이 마지막에 터졌다. 하객 한 그룹에 인사하러 갔더니 게임을 하고 있었다!! 원래 하객들끼리 게임도 할 수 있도록 여러 보드게임을 준비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결혼식 준비가 너무 힘들어서 도저히 이 부분까지 챙길 겨를이 없어서 아쉬웠는데, 이렇게 알아서 우리 결혼식을 즐겨줘서 더 보기 좋았다.

식이 끝나니 9시가 넘어 있었다. 마무리하고 집에 도착하니 밤 10시. 정말 길고 긴 결혼식이었고 하루종일 손님 맞이하는 건 쉽지 않았지만 우리 둘도 신나고 즐거운 하루였다. 참 감사한 하루라고 생각했다. 이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가장 고민이었던 건 하객들이 초대 받아서 왔는데 낯설고 불편해하면 어쩌지 걱정했다. 아무래도 이런 결혼식은 가본 적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니까. 실제로 결혼식 준비하면서 별별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터였다. 다행히 하객들 모두 다 문밖을 나서면서 "정말 즐거웠다. 이렇게 특별한 결혼식에 초대해줘서 고맙다"고 인사해서 감사했다. 


우리의 결혼식에 와주시고,
함께 즐겨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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