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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영입니다 Aug 01. 2023

1주 차 : 잔디의 탄생

정말 울지 않는 아기가 태어났다.

스무 시간 전 진통이 시작되고 지난한 시간이 흘렀다. 하루가 꼬박 지나가고 있는데 자궁경부는 고작 6cm 밖에 열리지 않았고 수시로 진행되는 내진에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지고 있었다. 무통주사를 맞긴 했지만 고작 3시간 정도만 숨 돌릴 여유를 주고 다시 1-2분 간격의 진통이 찾아왔다. 영상으로 배운 호흡법은 긴박한 그 순간 소용없는 느낌이었고, 점점 심해지는 진통에 침대 손잡이만 붙잡고 끙끙 알았다. 그렇게 스물한 시간째 이건 아니다 싶었다. 자궁경부가 10cm까지 열려야 하는데 남은 건 4cm... 지금처럼 10시간 이상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은 무서운 생각이 들었고 난 손을 들고 말했다. "지금 당장 마취 해주세요. 수술하겠어요."


그리고 1시간 후 수술이 시작됐다. 차가운 수술실로 들어가는 순간 진통을 참은 것이 너무 억울해서 눈물이 나기도 했으나, 이제 곧 끝이고 그렇게 궁금했던 아가를 만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더 컸다. 반신마취 후 수술은 신속하게 진행됐다. 개복하고 아기를 꺼냈다. 입원 시 다른 과정은 남편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지만 탯줄을 자르는 순간은 선물하고 싶어 표시했었다. 그런데 수술실 공기가 냉랭했다. 아기의 울음소리는 안 들렸고 의사, 간호사 선생님들의 긴급한 목소리만 들렸다. 탯줄을 자를 남편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몇 분이나 지났을까 의사 선생님은 아기가 중환자실로 가야 한다며 인큐베이터 속 아이를 데리고 급하게 나가셨다.


아기는 그렇게 조용히 세상 밖으로 나왔다. 임신기간 주변 사람들이 애 키우는 건 쉽지 않다며 으름장을 놓을 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아기는 안 울고 잘 클 거예요." 그런데 정말 울지 않는 아기가 태어난 것이었다.  아기는 폐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아 숨을 쉴 수 없어서 울지도 움직이지도 않았던 것이었다. 그렇게 아기를 보지 못한 채 병실로 돌아왔다. 진통이 너무 힘들어서였을까 수술 후 통증도 그럭저럭 참을만했다. 당장 침대에 꼼짝없이 묶여있는 것 빼곤 나쁘지 않았다. 다음날 소변줄을 빼고 조금씩 움직였는데 태동 없는 뱃속이 낯설었다. 아기를 보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아기는 꺼냈는데 뱃살이 줄어들지 않아서일까... 아기를 낳은 게 맞나 싶은 생각이 번뜩 들었다.


그리고 남편을 통해 중환자실로 들어간 아기의 상태에 대하여 설명을 들었다. 빠르게 응급조치가 되었고 기도삽관을 통해 호흡, 맥박 모두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나는 담담했다. 분명 아기는 낳기 직전까지 심장박동도 움직임도 모두 정상이었다. 어떠한 이벤트 없이 아기가 태어날 것이라고 확신했기에 중환자실에 있는 건 잠깐이고 내가 퇴원할 때 같이 퇴원하면 그만이지라고 생각했다. 하루에 한 번씩 의사 선생님과의 영상통화를 통해 아기 얼굴과 몸을 보았다. 작은 몸에 기관삽관줄, 영양수액줄 등 주렁주렁 매달린 선만 봐도 분명 심란했을 터인데 이상하게도 나는 평온했다.


그리고, 단 한 번뿐인 면회날 무너졌다. 처음으로 직접 본 아기는 양압기가 씌워져 있어 얼굴의 반이 가리어져 있었다. 심박/뇌파측정기 등 각종 선들도 정신없었고, 작디작은 발의 혈관을 찾아 꽃은 주사 바늘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작은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겪는 이 상황이 너무 마음 아팠다. 그리고 언제 퇴원할지 모르는 아기를 두고 나는 퇴원했다.



* 잔디(태명) : 볏과의 여러해살이풀. 높이는 5~10cm이며, 잎은 어긋나며 갸름하고 뾰족하다. 무덤, 언덕, 정원, 제방 따위에 심어서 흙이 무너지지 않도록 한다. 산과 들에서 자라는데 한국, 중국, 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출처 : 네이버 국어사전)


* ESTJ인 저(아내)와 ENFP인 남편이 함께 작성하고 있는 브런치 스토리입니다. (남편의 시선 : 1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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