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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모닥불 Aug 01. 2023

1주 차 : 탄생과 절망, 신생아중환자실(NICU)

OO병원 알림톡 도착 : OOO님, 수술이 시작되었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2023년 4월 12일 18시 45분 -


분만실에서 유도분만 시작 후 약 20시간의 진통을 버텨내고 있던 아내가 자연분만을 포기하고 제왕절개 수술실로 들어가고 난 뒤 친절한 알림톡이 도착했다. 분만실에서 아내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내내 내가 대신 아플 수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었다. 이제는 더 이상의 고통 없이 제왕절개로 아기를 꺼내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에 잠시 안도감을 느끼고 신생아실 입구에 기다린 지 약 20분이 지나던 찰나였다. 드디어 복도 한쪽 끝에서 의사 선생님과 신생아 카트가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의사 선생님의 발걸음이 마치 비상 상황이라도 발생한 듯이 유난히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나와 마주한 의사 선생님이 급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버님, 아기가 태어났는데 울지도 않고 움직이지도 못하고 숨도 제대로 못 쉬었어요. 그래서 급하게 응급처치를 진행해서 일단 지금 숨은 쉬긴 하는데 우선 신생아 중환자실로 들어가서 계속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의사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당황한 나머지 나는 아기의 얼굴도 제대로 볼 겨를 없었고 의사 선생님의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아기는 황급히 신생아 중환자실로 들어가 버렸다. 바로 그 순간 나는 아주 오랜만에 머릿속에서 절망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 단어는 내 몸 전체로 빠르게 스며들어 오기 시작했다. 내 주변 사람들은 모두 별 탈 없이 순산했다고 들은 것 같은데 도대체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핸드폰을 들고 갓 태어난 아기의 사진을 찍으면서 뜨거운 감동으로 온몸이 전율에 휩싸일 준비를 하고 있던 나였었는데...


나를 포함한 많은 한국인들이 일상생활에서 힘든 문제나 상황이 생겼을 때 '큰일 났다'라는 표현을 자주 쓰곤 한다. 그런데 바로 지금 이 순간 보통 큰일 난 것도 아닌 '진짜 큰일 났다'라는 말을 무의식적으로 되뇌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였다. 그만큼 받아들이기 힘들고 괴로운 상황을 마주하고 있었던 나였다. 또한 나는 특정 종교를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그동안 인생을 살아오면서 정말 힘들고 괴로운 순간에는 나도 모르게 어딘가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신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기도를 의식처럼 하곤 했었다. 바로 지금 이 순간 나는 그 의식을 행해야만 했다. 두 손을 꼭 부여잡고 제발 우리 아기가 살아 있게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이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각각 다른 조건과 환경에 처한 채로 살아가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너무 풍족한 나머지 음식물 쓰레기가 넘쳐나서 이를 버리는 것이 문제가 되는 반면, 지구 반대편 최빈국에서는 생존에 가장 기본적인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는 어린아이들이 속출하고 있는 것처럼. 또한 같은 대한민국 하늘 아래에서도 국민들 사이에서 빈부 격차와 불평등이 점차 심화되고 있기도 하다. 갑자기 웬 사회 문제 타령인가. 지금 바로 OO병원 신생아실 앞에서 나와 다른 사람들 사이에 전혀 다른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내가 의사 선생님과 아기를 신생아 중환자실로 들여보내고 절망과 한숨 속에서 기도하고 있던 그 찰나에 갑자기 신생아실 창문을 가리고 있었던 커튼이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OO병원 신생아 중환자실과 신생아실은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었다.) 커튼이 올라간 창문 너머로 평온하게 누워있는 신생아들이 보이고 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연신 사진을 찍는 아기 아빠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아이고 귀여워!", "아이고 내 새끼!", "까꿍!"


그 시간은 바로 매일 오후 7시에 진행되는 신생아실 창문 면회 시간이었던 것이다. 같은 날 같은 병원에서 태어난 아기와 아빠인데 어찌 이렇게 상황이 다르게 전개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이번에는 내가 왜 하필이면 평범상황이 아닌, 평범하지 않고 불행한 상황 쪽에서 있어야만 하는 것인가? 나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불행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입장과 처지를 생각본 적이 있었던가? 불행한 누군가는 다름 아닌 내가 될 수도 있었다. 평범한 것이 이토록 어려운 일이었음을 잊고 있었다.


여러 가지 생각과 감정이 교차하고 있던 와중에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나온 의사 선생님은 아기가 이제 움직이고 숨은 쉬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위로를 건넸다. 동시에 당분간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하면서 각종 정밀 검사를 통해 혹시나 뇌와 심장 등에 손상이 가지 않았는지 확인해봐야 한다는 단서를 남겼다. 의사 선생님의 설명이 끝난 후 간호사 선생 아기가 신생아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는 동안 필요한 준비물, 주의 사항 등에 대한 안내를 해주셨다.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는 신생아 중환자실 입원 기간 동안 아기가 써야 할 기저귀와 물티슈를 준비해야 하고, 엄마가 유축한 모유를 모유팩에 담아서 냉동보관 후 배달해야 하며, 내일부터 매일 오후 2시에 영상 통화로 아기를 볼 수 있는 화상 면회가 진행될 예정이라는 등등... 이야기를 듣고는 있었는데 정신이 반쯤 나가 있었던 터라 귀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아직 아내는 수술실에서 나오지 않고 있었다. 아내는 지금 이 상황을 정확하게 알고 있을까? 만약 아내도 알았다면 내가 그랬듯이 얼마나 놀라고 당황했을까? 아기가 들어간 신생아 중환자실 입구 앞에서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그리고는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신생아 중환자실을 영어로 NICU(Neonatal Intensive Care Unit)라고 하는구나. 오늘 같은 날이 아니라면 영원히 그 뜻을 알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용어였다.  


친절한 알림톡을 받고 난 후 약 1시간 동안 사나운 폭풍과 같은 시간을 보내고 나서 아내를 다시 만났다. 아내에게 고생했다는 이야기 외에 추가로 설명해야 할 것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또한 순산 소식을 기다리고 있을 가족과 몇몇 친구들에게도 우선 아기의 탄생을 메시지로 간략하게 알렸다. 물론 자세한 상황 설명은 생략한 채로였다. 앞으로 걱정이 태산 같긴 하지만 어쨌든 40주간의 여정을 마치고 우리 아기가 세상에 나오긴 한 것 아닌가!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지만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면서 지친 몸을 눕히고 잠을 청했다.  



* ENFP인 저(남편)와 ESTJ인 아내가 남과 여, 각각의 시선에서 육아 에세이를 함께 쓰고 있습니다. (아내의 시선 : 1주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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