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따뜻한 모닥불 Aug 12. 2023

5주 차 : 부모님의 품에 안긴 손녀, 가족이라는 끈

"미스코리아 서울 진 잔디 보러 왔어요!"

- 2023년 5월 14일 -


초인종 소리에 문을 열자마자 어머니가 흥겨운 목소리로 잔디를 부르면서 들어오신다. 오늘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어난 지 한 달 된 손녀를 처음으로 직접 보기 위해 집에 오시는 날이다. 그동안 사진과 영상으로만 만났던 손녀를 직접 보고 만지고 안아보면서 나의 부모님은 그들에게 새롭게 부여된 호칭인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되었음을 비로소 실감하 것 같아 보였다. 그동안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으셨지만 마음속으로 얼마나 간절히 손주를 기다리셨을까. 우리 부모님에게는 누가 뭐래도 손녀인 잔디가 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아기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손녀를 품 안에 안고 바라보는 부모님의 눈빛을 보면서 부모님과 나와 잔디 사이에 이어져 있는 가족라는 끈의 단면 속 들여다보게 된다.  태어난 잔디를 앞에 두고 앞으로 나와 부모님 앞에 놓인 인생의 길이가 생각나는 건 왜일까. 내가 마흔 살에 잔디가 태어나서 계산하기가 편해서인지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20년'이라는 숫자였다.


20년 후에 잔디는 스무 살이 되어 대학생이 되고 나는 60세가 되어 회사를 나오게 될 것이다. 현재 사기업 정년은 60세이며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따른 사회적인 합의에 의해 정년이 65세로 연장될 수도 있다는 희망 섞인 가정은 일단 제외하고 생각하면 그렇다.(사실 사기업 정년이 60세여도 막상 실제로 60세까지 다니는 사람들의 비율은 극소수라는 점이 더 중요한 것 같긴 하지만...) 만약 잔디가 대학생이 되기 전에 내가 회사를 그만두게  수도 있는 상황을 가정해 본다. 잔디가 한창 예민할 수도 있는 중고등학생 무렵에 아빠가 회사를 그만둔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혹시나 충격(?)을 받으면 어쩌지? 실제로 경제적인 측면에서 우리 가족에게 적잖은 영향을 미칠 가능성커 보인다. 벌써부터 회사에서 쫓겨날(?) 걱정과 푸념을 하기에는 아직 이르긴 하지만 어쨌든 20년이라는 숫자 범한 직장인인 나에게 가장으로서의 무게를 느끼게 는 것만은 확실하다.


20년 후에 60세가  의 나이와 함께 각각 87세, 85세가 될 아버지와 어머니의 나이도 머릿속에 떠오른다. 앞으로 잔디가 건강하고 예쁘게 성장해 나가는 20년의 기간 동안 나의 부모님은 더 늙고 쇠약해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새로운 만남과 기쁨이 시작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또 다른 이별과 슬픔의 시간깝게 다가오게 된다. 비록 부모님의 신체적인 노화는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겠지만 그들의 하나뿐인 손녀인 잔디가 잘 자라나는 모습과 우리 가족이 항상 화목하게 잘 지내는 모습을 보여드림으로써 정서적으로 즐겁고 편안한 상태를 유지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중학생이 되었을 무렵, 사춘기 또는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부르던 시절에 아버지께서는 평소 나에게 멀리 시골에 계신 할아버지, 할머니께 전화 좀 드리라는 잔소리를 입버릇처럼 하시곤 했었다. 그때마다 나는 딱히 할 말도 없는데 일부러 전화를 드리는 것이 어색하고 불편하게 느껴졌었고 그저 의무감으로 할아버지, 할머니와의 짧은 전화 통화를 마쳤던 기억이 난다. 세월이 지나 어느덧 나도 어른이 되었 자연스레 할아버지, 할머니와의 전화 통화가 조금은 편해지는 나이가 되었다. 그러나 세월은 언제까지나 인간을 기다려주지는 않는 법. 할아버지는 시력과 청력거의 상실하셔서 이제 더 이상 전화 통화는 불가능해졌다. 그리고 약 3년 전 할아버지가 하늘나라로 가시면서 이제는 명절에 시골에 내려가더라도 할아버지는 더 이상 뵐 수 없게 되었다.


부모님의 품 안에 안겨 있는 잔디를 보면서 할아버지, 할머니께 전화 좀 드리라 하시던 아버지의 잔소리가 떠올랐다. 아버지도 내가 태어나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기쁨을 느끼는 동시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늙고 병들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 슬픔도 느꼈을 것이다. 게다가 그 시절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이 학창 시절부터 시골에 할아버지, 할머니를 남겨두고 도시로 올라와 떨어져 살았던 탓에 일 년에 두 번, 설과 추석 때만 찾아뵐 수 있었 무뚝뚝한 성격 때문에 전화 통화를 자주 하는 편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아버지는 자인 내가 대신 평소에 자주 연락을 드려서 즐겁게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기 원하셨던 것 아닐까. 이제야 아버지의 잔소리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부모님과 나는 분명히 다른 시대를 살지만 각각의 세대 속에서 손주라는 존재 함께 가족이라는 끈으로 단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시골에 홀로 남아계신 할머니께 영상 통화로 잔디의 웃는 모습을 보여드리면서 말씀드렸다.


"할머니, 조만간 잔디를 데리고 려갈게요. 아빠와 엄마도 아무 일 없이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 마시고 할머니도 하루 세끼 식사 꼭 챙겨드세요!"

                        


* ENFP인 저(남편)와 ESTJ인 아내가 남과 여, 각각의 시선에서 육아 에세이를 함께 쓰고 있습니다. (아내의 시선 : 1주 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