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장모님이 새로운 일터인 우리 집으로 출근하시는 첫날이다. 조리원 퇴소 후 집에 온 다음 맞이하는 첫 평일날인 오늘부터 장모님이 집에 오셔서 육아 보조를 해주시기로 한 것이다. 아내는장모님의 육아 보조 근로조건(주 4일 10:00~17:00 근무)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사실 장모님은 육아 도우미 분야의 숙련된 베테랑이시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 장모님은 서울의 한 가정에서 약 18개월 남짓한 남자아이의 육아 도우미 일을 시작하셨었다. 이후 그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고 유치원에 가고 어느덧 초등학교 2학년 생이 되도록 수많은 시간을 함께 하며 육아 도우미 업무를 그 누구보다도 충실하게 수행하셨다. 아이 셋(아내, 처제, 처남)을 무리 없이 건강하게 잘 키워내면서 자연스럽게 익힌 노하우를 바탕으로 한 가정에서 7년이라는 긴 시간을 육아 도우미로서 함께 하며 서로 신뢰감을 쌓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 오신 것이다. 심지어 장모님이 봐주셨던 아이는 장모님을 '작은 할머니'라고 부르기까지 할 정도였고 아이의 엄마도 항상 친근하고 공손하게 장모님을 대해주곤 했었다고 한다. 그 7년의 기간 동안 장모님이 초창기부터 아이의 엄마에게 말씀하셨던 조건이 하나 있었다.
"언제가 될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내 딸이 출산을 하게 되면 바로 관둬야 해요"
그렇게 장모님은 한 직장에서 육아 도우미로 장기 근속하던 중 퇴사 조건이었던 큰 딸의 출산으로 인해 곧바로 이직(?)을 하신 셈이 된 것이다. 그것도 월급이 동등 수준이 아니라 대폭 삭감되는 조건으로 이직을 하셨다.
많은 사람들이 어린 시절에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유명한 그림 동화를 읽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미국의 아동 문학가 쉘 실버스타인이 1964년 발표한 작품으로서 지금까지 3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고, 전 세계에서 천만 부 이상 팔린 명작으로 알려져 있다. 나무는 소년이 어렸을 때부터 나뭇가지로 그네를 타도록 해주고 사과도 따먹게 해 주면서 서로 행복하고 즐겁게 지냈다. 세월이 흐르고 소년이 어른으로 성장했을 때 나무는 소년에게 자신의 가지를 베어서 집을 짓도록 하고 자신의 몸통을 베어서 배를 만들도록 도와준다. 이후 소년이 노인이 되어 돌아왔을 때에는 나무는 자신에게 남은 유일한 나무 밑동을 내어주고 앉아서 쉬도록 해주면서 마지막까지 한결같은 사랑을 주고 행복해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어린 시절에 읽었을 때에는 나무 밑동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했을 것 같다. 나 또한 성인이 되어 다시 생각해 보니이제야 비로소 그 의미를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다. 특히나 아기를 낳고 기르는 과정을 거치면서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마지막 이야기는 더욱더 내 가슴에 깊게 와닿는다.
나와 아내가 결혼 후 한참 동안 아기 소식이 없자 장모님은 당시 우리 부부가 살고 있던 신혼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집으로 이사를 오셨다. 아직 아내가 아기를 가진 것도 아니었고 정확히 언제 가지겠다는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닌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맞벌이 회사원이었던 나와 아내가 자녀 계획을 갖는데 부담이 없도록 미리 배려해주고 싶은 마음 하나로 쉽지 않은 결정을 하고 행동으로 옮기셨던 것이다. 물론 당시 함께 살고 있던 장인어른과 처제, 처남의 흔쾌한 동의와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그런데 장모님이 우리 부부 곁으로 오신 후 약 1년도 되지 않아 우리 부부는 아기를 가지는 결정을 하는 것보다는 둘의 회사와 가까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겠다는 결정을 먼저 하게 되었다. 나중에 아기를 봐주시겠다는 일념 하나로 20년 이상 살던 정든 동네와 집을 떠나서 낯선 동네인 딸의 곁으로 오셨던 장모님 입장에서는 참으로 서운해하실 일이었다. 우리 부부는 아쉬워하시는 장모님을 그 동네에 남겨두고 둘의 회사와 가까운 직주근접 지역으로 이사를 오고야 말았다.
그로부터 약 2년 후 아내는 출산을 했고 오늘부터 이곳은 장모님의 새로운 출근지가 되었다. 장모님은 앞으로 지하철 20분과 도보 20분을 합쳐서 편도 40분, 왕복 1시간 20분 남짓의 적지 않은 통근시간과 함께 우리 부부가 살고 있는 집으로 출퇴근하면서 손녀의 육아 보조를 해 주실 것이다.또한 약 1년 남은 아내의 육아휴직이 끝나게 되면 그때부터는 육아 보조가 아니라 전업 육아 도우미로서 지금보다 더 많은 시간을 혼자 우리 집에서 손녀를 돌봐주면서 보내실 것이다. 만약 우리 부부가 현재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를 오지 않았다고 가정한다면 장모님의 출퇴근 시간은 걸어서 왕복 10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장모님은 그 어떠한 불평도 전혀 없이, 오히려 너무나 기쁜 마음으로 흔쾌히 매일 우리 집에 오겠다고 하셨다. 돌이켜보건대 장모님의 이러한 희생과 전폭적인 육아 지원이 전제되지 않았더라면 맞벌이인 우리 부부는 아이를 낳는 결정을 쉽사리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우리는 부모님의 도움으로 성장해 나가다가 성인이 되어 결혼을 하면서 부모님으로부터 독립을 하게 되지만 아이를 가지면 다시 부모님의 도움을 필요로 하게 된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아직까지는 남성의 육아 휴직이 일상적인 일은 아니기 때문에(여성의 육아 휴직이 일상적이지 않은 곳도 아직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부부가 온전히 스스로의 힘으로 육아를 한다는 것은 많이 힘겨운 것이 현실이다. 물론 아이를 갖는 모든 사람들이 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거주지 등 물리적 환경에 따라서 부모님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우리 부부는 장모님의 헌신과 물리적 환경(조금 멀어서 죄송스럽지만)이 동시에 충족된 덕분에 육아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상당히 운이 좋은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나무가 마지막에 자신에게 남은 유일한 나무 밑동을 소년에게 내어주고 앉아서 쉬도록 해주고 행복해하는 장면을 다시 한번 떠올린다. 고령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여가생활을 포기하고 딸의 자식인 손녀를 돌봐주시는 장모님의 한결같은 사랑에 매 순간 감사하는 마음이다. 동시에 한국 사회에서 많은 부모님들이 그들에게 남은 유일한 나무 밑동을 내어주지 않더라도 그 자식들이 온전히 육아를 잘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를 소망한다.
* ENFP인 저(남편)와 ESTJ인 아내가 남과 여, 각각의 시선에서 육아 에세이를 함께 쓰고 있습니다. (아내의 시선 : 1주 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