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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모닥불 Aug 06. 2023

3주 차 : 지옥과 천국 사이, 산후조리원

"잔디 부모님, 아기 목욕 참관 시간입니다. 지금 나와주세요." 

- 2023년 4월 29일 06시 30분 -


산후조리원 산후도우미님의 아침 모닝콜과 함께 2주간의 산후조리원 생활의 마지막 날 일과가 시작되었다. 신생아를 돌보는 일은 하나부터 열까지 새로움과 어려움의 연속일 테지만 그중에서도 신생아 목욕이란 특히 더 섬세하고 어려운 고난도의 작업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우리보다 앞서 산후조리원을 거쳐갔던 주변 친구들 중 일부는 그곳에서 배운 것들 중 나중에 실전에서 가장 유용하게 써먹는 기술 중 하나로 신생아 목욕을 꼽기도 했었다. 또한 출산 후 목과 팔목 관절이 아픈 상태인 아내 대신 아기 목욕은 내가 꼭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터라 두 눈을 부릅뜨고 동영상까지 찍어가면서 목욕 참관에 집중했다. 과연 집에 가서 배운 대로 아기 목욕을 잘 해낼 수 있을까?


목욕 참관 후 짐 정리를 마치고 오전 9시 30분에 조리원 문 앞을 나서서 집으로 향했다. 많은 임신, 출산, 육아 선배들이 천국 같은 산후조리원을 떠나는 순간부터 이제 본격적인 고생 시작이 될 테니 산후조리원에 있는 동안 잘 즐기다 오라고 했었다. 그렇다. 지금까지 잔디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초반에 의학의 힘으로 도움을 준 병원과 부모로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산후조리원의 품을 벗어나서 드디어 본격적으로 우리 부부가 중심이 되어 육아를 해나가야 하는 실전 무대가 이제 시작되는 것이다.


2주간의 산후조리원 생활을 돌이켜 보건대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으라면 주저할 것 없이 마음속에 떠오르는 한 장면이 있다. 그건 바로 아내가 산후조리원에 처음 입소하던 날의 일이었다. 잔디가 태어나자마자 신생아 중환자실로 들어간 후 4일째 되던 날 아직 잔디의 퇴원이 언제가 될지 미정인 상황에서 우리 부부는 어쩔 수 없이 아기 없이 둘만 덩그러니 산후조리원으로 오게 되었다. 병원 문 앞을 나서서 산후조리원으로 들어서던 그 순간절대로 잊히지 않는다. 산후조리원 문 앞에는 '사랑스러운 잔디와 엄마를 환영합니다'라는 팻말이 우리를 맞이했지만 잔디는 그 자리에 없었다. 당시 나의 마음은 마치 전쟁터에서 동료들을 모두 잃고 혼자 간신히 살아남아 고향으로 터벅터벅 돌아온 패잔병과 다름없었다. 마음 한 구석이 헛헛한 느낌에 한없이 우울해지려는 기분을 가까스로 단단히 추스르고 담담하게 산후조리원 원장님과의 기본적인 면담을 진행했다. 아기의 아빠이자 남자인 나도 간신히 감정을 억누르며 부여잡고 있었는데 아기의 엄마이자 여자인 아내는 오죽할까 하는 걱정이 계속 들던 찰나에 우려하던 상황이 발생하고 말았다. 원장님과의 면담을 마친 후 신생아실 유리창 너머로 일렬로 정렬해서 누워있는 다른 아기들을 보는 순간 아내가 참고 있던 울음을 터뜨린 것이었다.


사실 잔디가 신생아 중환자실에 들어가고 아내가 퇴원할 때 같이 퇴원이 불가능해짐에 따라 나는 미리 예약되어 있던 산후조리원 일정 변경에 대해 고민하기도 했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생각보다 우리 부부와 비슷한 케이스가 많았는데 아기 없이 산모만 산후조리원에 가게 될 경우 다른 아기들을 보고 더 우울해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대부분이었다. 또한 아기 관련 각종 실전 교육을 받는 것이 불가할 뿐만 아니라 아기가 돌봄 서비스를 받을 수 없으면 손해라는 인식 때문에 아예 일정을 뒤로 미루고 우선 집으로 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흔히들 임신, 출산, 육아 과정은 부부가 서로 함께 만들어나가는 과정이라고 하지만 남편 입장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아보다 아기 위주로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가끔 발생하는 것 같다. 반대로 아내 입장에서도 남편보다 아기만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 오히려 남편이 섭섭해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처음에는 나도 모르게 당장 막 태어난 아기만을 우선적으로 중심에 놓고 생각을 하다 보니 산후조리원 일정을 뒤로 미루고 우선 집으로 가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그러나 차분히 생각해 보고 고민을 거듭하면서 신중하게 내린 결론은 아기는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잘 받고 있으므로 산모인 아내는 지금 당장 산후조리원에 가서 몸과 마음의 회복을 위해 특별한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잠시나마 아기만을 우선적으로 중심에 놓고 생각했었던 내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다. 가족이라는 공동체는 중요한 의사 결정을 해야 할 때 어느 한 사람에게만 치우치기보다는 모든 구성원들의 상황을 함께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교훈과 함께 말이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결정은 처음 산후조리원에 입소하던 순간 잠깐 동안 강렬하게 느꼈었던 패배감과 우울감을 뒤로하고 나에게는 결국 좋은 경험으로 남게 되었다. 산후조리원에서 2주 동안 회사에 나가서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온전히 모든 시간을(매일 칼퇴 후 산후조리원으로 귀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아내와 같이 생활하고 숙식하면서 산모의 신체적, 정신적 고충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첫 1주일간은 잔디가 없었지만 산모인 아내의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할 수 있도록 설계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지켜보면서 산모에게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산후조리원의 효용성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산후조리원에서 아내와 함께 지내는 과정에서 남편으로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을 찾고자 나름대로 고민하고 육아에 대한 마음가짐을 더 단단히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다행히 우리의 사랑스러운 잔디는 아내의 산후조리원 입소 후 정확히 1주일 만에 건강하게 신생아 중환자실을 퇴원하고 산후조리원에 무사히 합류해서 남은 1주일을 함께 보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대부분의 산후조리원에서 아기가 없이 지내는 기간은 산후조리원 비용에서 일정 금액(우리가 지낸 곳의 경우 10%)을 돌려주는 것으로 정해져 있었다. 제는 우리도 다른 부부들처럼 모자동실을 마음껏 하면서 서로를 꼭 끼어 안고 체온과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그동안 사진을 못 찍었던 것에 대한 한 풀이라도 하듯이 핸드폰 저장 용량이 꽉 차서 다른 사진을 지워야 할 정도로 연신 사진을 찍어 대며 해맑게 웃었다. 지금 이 순간 여기가 바로 사람들이 그토록 얘기하던 '조리원 천국'이었다.


잔디가 주말에 산후조리원에 합류한 후 월요일 아침이었다. 산후조리원 신생아실 유리창 너머에 평온하게 누워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는 잔디와 눈을 마주친 채 인사를 하고 회사로 출근하였다. 출근길 거리를 걷는 동안 그날따라 햇살이 유난히도 눈부시게 나를 밝게 비춰주었다.



* ENFP인 저(남편)와 ESTJ인 아내가 남과 여, 각각의 시선에서 육아 에세이를 함께 쓰고 있습니다. (아내의 시선 : 1주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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