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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모닥불 Aug 03. 2023

2주 차 : 하루 중 가장 기다려지는 순간, 화상면회

OO병원 신생아실 님이 전화를 걸고 있습니다 : 수락 / 거절  

- 2023년 4월 19일 13시 59분 -
  

오후 2시 즈음이 되자 오늘도 어김없이 산후조리원 침대 머리맡에 놓아둔 태블릿 화면에 스카이프 발신전화가 울린다. 잔디가 태어나자마자 신생아 중환자실로 들어간 다음날부터 매일 꼬박 진행된 화상 면회는 오늘로써 벌써 7번째를 맞이했다. 코로나로 인한 대면 면회 불가로 신생아 중환자실에 있는 아기들은 기본적으로 화상 면회만 허용되며 산모 퇴원 전에 딱 한 번만 대면 면회가 가능하다.


영화 러브액츄얼리에 작가 제이미(콜린 퍼스 분)와 가사 도우미 오렐리아(루시아 모니즈 분)의 유명한 로맨스 장면이 있다. 작가 제이미가 작업 중인 원고가 바람에 날아가 연못에 떨어졌는데 이를 줍기 위해 가사 도우미 오렐리아가 연못 속으로 풍덩 뛰어든다. 그 모습을 본 제이미는 오렐리아에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오렐리아가 차로 집에 데려다 달라고 하는 부탁에 이렇게 대답한다.

"Sure. It's my favorite time of day, Driving you."


제이미에게 오렐리아를 차로 데려다주는 순간이 하루 중 가장 좋은 시간이었듯이, 최근 1주일간 나에게는 화상 면회가 하루 중 가장 설레고 기다려지는 순간이었다. 태어나자마자 생이별을 해야만 했었던 상황에서 화상 면회를 통해 태블릿 화면으로나마 잔디의 얼굴과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의사 선생님과 아기의 상태와 궁금한 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다른 일반적인 신생아 부모들은 병원과 산후조리원에서 모자동실을 통해 아기를 직접 안고 그 숨결을 느끼면서 얼굴을 한참이고 자세히 볼 수 있었겠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던 에게는 하루 중 단 10분 남짓 허용된 이 시간이 주는 의미가 그 무엇보다도 컸다. 뿐만 아니라 신생아 중환자실의 간호사 선생님들도 아기가 참 예쁘고 귀엽다고 말씀해 주시면서 힘들고 바쁜 와중에도 틈 나는 대로 아기 사진과 영상을 찍어서 공유해 줘서 너무나 고맙고 감사했다. 마침 오늘 화상 면회에서는 가장 중요했던 뇌 초음파검사에서 이상 없음 소견이 나왔다가오는 주말에 퇴원이 가능하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기에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화상 면회를 마칠 수 있었다.


사실 첫 화상 면회는 불안하고 걱정스러운 상태에서 잔뜩 긴장한 채로 맞이했었다. 태어나자마자 신생아 중환자실로 들어갔었기에 밤새 별일 없었는지 노심초사하던 터였다. 우선 의사 선생님께서는 간밤에 잔디의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었다는 다행스러운 소식을 들려주셨다. 그러나 시에 추후 정밀 검사를 통해 뇌나 심장에 이상이 없는지 정확히 확인하기 전까지는 여전히 상황을 계속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또한 잔디가 태어날 때 울지 않고 움직이지 않고 숨을 못 쉬었던 이유는 양수 흡입 때문으로 추정되는데 실제로 양수를 흡입했던 아기들 중 회복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경우도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화상면회 내내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태블릿 화면으로 처음 본 잔디의 얼굴은 기관삽관과 양압기, 영양수액 투입관 등으로 가득 뒤덮여 있어 제대로 생김새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이 어린 아기에게(그것도 다름 아닌 내 애였다!) 어른들도 쉽사리 견디기 어려울 것 같은 각종 의료 장비들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 내 마음이 얼마나 착잡했었던가! 특히나 아기 사진을 기다리는 양가 부모님들께도 이런 사진을 보내드릴 수 없는 노릇이었다.


3일 동안 세 번의 화상 면회 후 아내가 퇴원하던 날, 딱 한 번만 허용되는 대면 면회 시간이 다가왔다. 신생아 중환자실 입구 세면대에서 손을 깨끗이 씻고(태어나서 이렇게 손을 이렇게 열심히 구석구석 깨끗하게 씻었던 적이 있었던가...) 손 소독제를 바른 후 일회용 장갑을 끼고 가운까지 입었다. 에어샤워까지 마친 후 마침내 신생아 중환자실에 입장한 나 아내는 드디어 꿈에 그리던 잔디의 얼굴을 직접 볼 수 있었다. 태블릿 화면으로 보았을 때는 전체적으로 얼굴과 몸이 꽤나 커 보였었는데 실제로 보니 너무나도 작고 연약하기 이를 데 없었다. 갓 태어난 신생아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힘겨웠을 시간들을 영문도 모르고 참고 견뎌내야 했을 잔디가 안쓰러웠지만 한편으로는 지금까지 이렇게 잘 버텨 주어서 너무나 고맙고 대견스러웠다. 그리고 신생아 중환자실의 간호사 선생님들과 잔디의 상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 분들이 지금 이 순간 부모를 대신해서 잔디에게  애정과 사랑을 듬뿍 주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짧은 대면 면회를 마치고 다시 잔디와 잠시 이별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신생아 중환자실 간호사 선생들께 우리 아기를 잘 부탁드린다는 말을 하는데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지고 목이 메었던 건 왜일까. 그건 아마도 잔디와 잠시 또 헤어져야 하는 슬픔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그와 동시에 잔디가 잘 회복할 수 있도록 사랑과 정성으로 보살펴 주었던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들의 노력과 헌신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었을게다. 인생을 살면서 내가 누군가에게 느낀 고마움 때문에 눈물까지 흘린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아닌 나의 아기에게 누군가가 베풀어준 은혜에 대해서는 고마운 마음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와 나도 모르게 눈물까지 나오게 만들었던 것이다. 잔디의 신생아 중환자실 퇴원을 이틀 앞두고 모유 배달을 가면서 아내와 함께 쓴 손 편지와 소소한 간식거리를 간호사님께 수줍게 내밀었다.


신생아 중환자실 선생님들께 :)

우리 아기를 사랑과 정성으로 보살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선생님들 덕분에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스카이프로 보내주신 사진과 영상을 보면서 기다리는 하루하루가 안심되고 행복했습니다. 앞으로 더 예쁘게 건강하게 잘 키우도록 하겠습니다. 항상 건강 유의하시고 행복하세요. 고맙습니다.

- 잔디 엄마&아빠 올림 -



* ENFP인 저(남편)와 ESTJ인 아내가 남과 여, 각각의 시선에서 육아 에세이를 함께 쓰고 있습니다. (아내의 시선 : 1주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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