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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 Feb 07. 2024

월급 없는 아쉬움

아주 오래전 사회 초년생 시절, 어느 날 출근하던 길에 문득 월급 통장이 화수분 같다는 생각을 했다. 들어온 돈을 다 써도 다음 달이면 어김없이 채워지니. 다 써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저 돈 쌓이는 게 한 달 뒤로 미루어진 것뿐. 그러니 충동구매는 돈이 아니라 시간을 지불하는 것이었고 시간은 늘 금방 지나갔다.


화수분이 사라진 지금 가장 어려운 것은 큰 비정기 지출이다. 예를 들면 새로운 아이맥이나, 새로운 노트북이나, 새로운 태블릿이나, 새로운 스마트폰, 새로운 이북리더기 같은 것. 사고 싶은 스펙으로 다 구매하면 6백만 원을 넘기는데 이건 내 열 달 치 생활비이다. 그렇다, 새로운 전자기기가 가지고 싶어서 열심히 스펙을 고르다가 방금 웹페이지를 닫았다. 퇴사 전에 좀 질러놓을걸, 아쉽네.

자동차를 새로 사는 것은 꿈도 못 꾼다. 지금 생각하면 사회 초년시절에 무슨 생각으로 덜컥 차를 샀을까 싶다. 지금은 물론이고 회사 다닐 때도 나이 좀 든 후에는 몇 천을 선뜻 지출하지 못하겠던데 말이다. 사람 나름이겠지만 돈 들어가는 일, 자동차 구매나 아파트 인테리어 등, 그래도 일생에 한 번쯤은 해봐야 하는 일은 겁 없는 어린 시절에 지르는 것이 나을지도. 아니면 평생 못 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종종 사업이나 프리랜서 일을 그려보곤 하는데, 평생을 예측 가능하고 규칙적인 소득으로 살아왔던지라 상상이 가지 않는다. 비 정기적인 수입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 건지. 만일 내가 사장이면 고용인의 월급을 대체 어떻게 주어야 하는지. 인건비 후려치는 악덕 사장도 많지만 어쨌든 세상의 모든 사장님들 존경합니다. 그토록 욕했던 회사, 이제 보니 참 고마웠습니다, 내가 뭐라고 월급도 주고 보너스도 주고 병원비도 내주고. 하지만 그래도 다시 가고 싶지는 않으니 사서 고생인 건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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