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소 Mar 25. 2024

그림

언젠가는 되겠지.

회의 시간이면 칠판에 슥슥, 개념이 쏙 들어오게 그림을 그리는 친구들이 있었다. 노트에 솜씨 있게 그림을 곁들여 필기하는 친구들도 많이 있었다. 나는, 미술시간에 그리는 고전적인 수채화와 소묘는 물론이요, 일상생활의 이런 실무적 그림 그리기에도 도무지 재주가 없었다. 5살 조카가 그리는 만화조차도 도저히 따라 할 수가 없었다. 왜 나는 상상력도 관찰력도 전달력도 손재주도 아무것도 없는 것일까 좌절하며, 그림을 쭉쭉 뽑아내는 사람들을 동경했다. 무언가 그리고 싶은 기분이 들 때면 애꿎은 네모와 동그라미만 반복해 그리며 까맣게 색칠했다.


그래, 그림을 그려보자. 없는 예술적 감각과 상상력은 키우지 못해도, 손재주는 반복하면 늘지 않겠는가? 마침 동네에서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화실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멋진 소묘책을 펼치고 따라 해 보려 했으나 이내 좌절. 하나도 멋있지 않은, 남에게 자랑할 수 없는 책을 골랐다. '거의 모든 것의 드로잉'이라는 책인데 다양한 물체의 단순화된 형태가 실려있다. 처음에는 왠지 거부감이 들었는데 (멋있지 않으니까!), 생각 없이 따라 그리다 보니 재미있다. 그래, 이게 지금 내 눈높이인거지. 흔들림 없이 선을 그을 수 있게 되는 것부터 목표로, 아무거나 그리고 그리자. 그릴 수 있게 되기까지 그리자.

'어반 스케치 핸드북'에 실린 그림은 어마어마한 난이도라서 지금 내 실력으로는 따라 그릴 수 없지만, 팁은 읽으면서 새겨둘 만하다. 실린 그림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각 그림에는 작가가 사용한 필기구와 소요 시간이 나와있는데, 일필휘지가 아니라 3시간 4시간씩 그린다는 것을 보며 마음의 위안을 조금 얻었다. 그래, 세상에 쉬운 건 없지. 나도 4시간 동안 촘촘히 그리면 잘 그릴지도 몰라!


나도 언젠가는 펜과 노트 하나 들고 여행을 다니며 내 눈에 보이는 것들을 내가 느끼는 감정을 담아 그려낼 수 있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옷을 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