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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 Apr 25. 2024

뺑오쇼콜라

경험의 과시.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아 초콜릿이 들어간 빵은 사 먹지 않지만, 뺑오쇼콜라만은 애틋함이 있다. 사연이 있다.

겨울에 식당이 모두 문을 닫은 프랑스 소도시에서, 유일하게 문을 연 빵집에서 사 먹은 뺑오쇼콜라. 당시에는 생존의 문제였던지라 맛보다는 그저 안도했던 기억만이 남아있다.  

그리고 정말 맛있어서 두고두고 기억나는, 겨울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의 한 카페에서 먹은 뺑오쇼콜라. 맛있어서 눈이 반짝 뜨였었다. 조용하고 어두운 작은 카페, 두툼한 잔에 담긴 커피와 접시에 내어준 뺑오쇼콜라가 그때 왜 그렇게 맛있었는지 모르겠다. 한 입 베어무니 촉촉한 페이스트리와 빵보다 살짝 온도가 낮은 초콜릿 조각이 부드럽게 어우러졌다.  

그 이후로는 그런 맛을 느끼지 못했다.  


허영만의 만화, '커피 한 잔 할까요'에 나온 노아스 로스팅에 아침 커피를 마시러 쓸데없이 부지런히 갔다. 진열대에 화려한 페이스트리들이 잔뜩 있었다. 뺑오쇼콜라가 눈에 띄었다. 갑자기 마음이 동해서, 정작 고른 것은 옆에 있던 아망오렌지. 아몬드와 오렌지가 들어갔으니 맛있겠지. 그때처럼 눈이 반짝 뜨이는, 나른하고 기분 좋은 만족감을 얻을 수 있을까?

실망스러웠다. 오기가 생겨서 바로 일어나 요즘 떠오르는 띠띠빵빵에 갔다. 여기 페이스트리가 그렇게 맛있다던데. 뺑스위스를 시켰다. 체리조림이 들어서 특이한 맛이었다. 하지만 빵은 역시나 실망스러웠다. 그냥 동네 빵집에 가도 될 걸 그랬어. 요즘 맛있다는 빵의 기준이 내 기준과 달라진 거 같기도 하다. 웹소설에서 자주 보던 '요즘 것들은, 에잉' 하는 소리가 머리를 맴돌았다.


원래 페이스트리는 결결이 텅 비어있는 것이 아니었던가? 먹고 배부르면 안 되지. 그리고 요즘 유행하는 저 얇고 빠삭한 결. 보기에는 예쁘지만 심하게 부스러지는, 먹으라고 만든 것이 아니고 아무 맛도 없는 시럽 코팅 되어 있는 껍데기가 싫다. 퀸아망이나 번 류는 심지어 코팅이 엿처럼 뭉쳐있어 이에 찐득하게 달라붙고 딱딱하여 씹히지도 않는다. 보기에 예쁘고 겉바속촉을 오래 유지할 수 있어 유행인 듯한데, 그렇게 유지되는 건 바삭이 아니다.


그래도 띠띠빵빵이 조금 더 제대로라는 생각은 들었다. 보기만 했지만, 뺑오쇼콜라의 윗부분을 저 가느다란 결로 뒤덮지 않고 내가 아는 정석적인 생김새로 만들었다. 그리고 중요한 빵칼, 띠띠빵빵에서는 제대로 된 톱니 빵칼을 내어주었다!


아망오렌지 6,800원 + 커피 4,500원 = 11,300원

뺑스위스 6,500 + 로즈힙 4,500 + 카다멈번 6,000 = 17,000원

버스 6,000원


쓸데없는 오기로 한순간에 34,300원을 썼다. 먹고 나서 기분이 좋으면 모르겠는데 더부룩하니 기분이 상해서 문제. 앞으로 인스타에서 맛있다는 빵집을 일부러 찾아가는 일은 하지 말자. 생각해 보면 그들도 나처럼 자기만의 별난 기준이 있을 테고 여러 정황이 맞물려 특별한 순간과 맛으로 기억하는 것 아닐까?


반성하는 마음으로 일요일까지 무지출 도전.


@ 어딘가에 가면 좋아하는 것보다는 거기서만 맛볼 수 있는 것을 시킨다. 다른 곳에는 없으니까, 굳이 여기까지 왔으니까. 명품처럼 과시에 돈을 쓰는 게 아니라 경험에 쓰는 거라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경험을 과시하고 싶은 마음이다. 게다가 그 경험이란 것도 그저 소비의 경험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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