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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 Apr 20. 2024

먼지, 먼지, 그림

오늘도 새로운 경험

한동안 진공청소기로만 바닥 청소를 했다. 그러다가 오늘 침대 밑에 먼지 쌓인 것이 보여 정전기 청소포를 밀대에 붙여 침대 밑부터 시작하여 집안 바닥을 전부 밀었다. 엄청난 먼지가 뭉텅이로 붙어 나왔다.

그러고 나니 기분이 매우 산뜻하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공기가 맑아진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걸을 때 맨발에 닿는 바닥 느낌이 다르다. 눈에 띄지도 않는 작은 먼지를 느낄 수 있다니. 집이 깨끗해진 것도 좋지만, 이 놀라운 감각이 기쁘다. 주변의 미세한 차이를 느낄 수 있는 것. 살아있다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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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평소보다 더 일찍, 5시 조금 넘어 눈을 떴다. 샐러드를 먹고, 단백질 음료와 바나나를 가방에 넣고 공원으로 나갔다. 한 시간 정도 공원을 돌고 벤치에 앉았다. 연둣빛으로 무성한 나무들이 반짝인다. 좋네. 멍하니 30분 정도 앉아 바라보았다.

원래 나는 야외에서 앉지 않는다. 먼지와 흙이 가득하고 벌레가 기어 다닐 야외 벤치에 앉다니. 다른 사람들이 털썩 털썩 앉는 것을 보면 신기했다. 정장을 입고도 거리낌 없이 앉는 사람들을 보며 옷을 매일 세탁하나, 의자의 거친 면에 올이 나가지는 않을까, 보고 있는 내 마음이 사정없이 불편했다.

그런데 갑자기, 평소보다 이른 햇살이 사람 없는 공원에 내리는 것을 보니 벤치에 앉아있고 싶었다. 앉아보니, 웃음이 난다. 좋은 거였어. 지나가는 사람이 아니라 머무는 사람이 되었다. 야외에 앉아도 아무 일 없구나. 딱히 옷이 육안으로 구분이 될 만큼 더 더러워지는 것 같지도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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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매일 그림을 그리러 화실에 들른다. 열심히 하지는 않고 그냥 규칙적으로 한 시간쯤 앉아 있다가 온다. 독립된 물체 하나를 그리는 것은 잘하든 못하든 어렵지 않은데, 복잡한 장면, 물체가 겹쳐 있는 모습은 대체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아예 나는 불가능하다고 못 박아두고 있었다.

그런데, 그냥 하니까 된다. 의심을 억누르고 하면, 안 될 것 같지만, 망친 것 같아도 그냥 계속하면, 봐줄 만한 게 나온다.

나뭇잎 그림자를 대체 어떻게 표현하지 싶었는데 대충 색칠하니 그럴듯하게 보인다. 나무 뒤에 있는 건물을 어떻게 그리지 했는데 어떻게든 그리고 나면 봐줄 만하다.

책에 있는 원본 그림과는 천지차이이고, 심지어 책에서 하란대로 곧이곧대로 다 따라한 것도 아니고, 가까이서 보면 선이 엉망진창이지만, 그래도 멀리서 보면 봐줄 만하다. 물론, 나는 책에 있는 그림을 따라한 것이라, 다른 사람이 이미 단순화하고 특색을 잡아 놓은 것을 다시 베낀 것이니 실물을 그리는 것보다는 훨씬 쉽다.

그래도, 안될 것 같아 보이는 일도, 하면서도 역시 안되네 싶은 일도, 그냥 하면 되는 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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