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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 Jun 18. 2023

나갈 준비

'그 도시는 세상의 다른 많은 도시들과는 달랐다.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배고플 때 음식을 먹었고, 병에 걸려 몸이 아프게 되면 큰돈을 들이지 않고도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아이들은 학교에 다녔으며, 거의 모든 사람이 일자리를 가지고 있었다. ... 한마디로 진짜 불행한 삶을 산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또 행복하지도 않았다.'  
- 『꾸뻬의 행복 여행』에서


나는 지금 조금 불행하다.


나를 아끼는 삶, 남이 봐도 멋진 삶, 지금 불행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후회하지도 않을 삶을 살고 싶은데 그게 무엇인지 모르겠다. 한 동안은 다른 사람들의 에세이와 강연을 열심히 뒤져가며 '올바른' 길을 찾고자 했다. 하지만, 마치 시험과목의 정답을 외우듯 올바른 삶의 방식을 정하려 하는 내가 우스워졌다. '스펙'을 만들어 좋은 대학을 가고 대기업에 취직하라는 말이나, 'You Live Only Once' 가슴이 뛰는 일을 찾아 느리게 살라는 말이나, 그렇게 하지 않으면 뒤쳐진 인생인양 압박감을 느껴야 한다면 뭐가 되었든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퇴사를 하려고 한다.  


덜 불행하기 위해 퇴사하는 것인지 퇴사를 고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불행한 것인지는 헷갈린다. 당분간은 경제활동을 할 수 없으니 조기은퇴이다. 나이가 있어 다시 복귀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 원하지 않게 완전 은퇴가 될 수도 있다. 모든 직장인이 한 번쯤 고민해 봤을 테고 이유는 여러 가지이겠지만, 내 개인적 이유에 대해 공감을 구하지는 않으려 한다. 이것은 퇴사 결정 후 마주치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이다. 특별한 재주 없는 평범한 사람이 (현실감각과 생존능력은 평범 이하인 사람이) 그 상황을 지나가는 기록이다. 퇴사 후 세계 여행이나, 어디 어디 한 달 살기 같은 건 할 수 없는 상황이라, 그저 밋밋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조기 은퇴를 하거나 나만의 행복을 찾아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는 동화의 마무리 - happily ever after로 끝난다. 정말 궁금한 것은 그 이후에 다가오는 현실인데 말이다. 당장의 공과금은 어떻게 낼 것인지, 1년 후, 5년 후, 30년 후에도 지속가능한 삶을 살고 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그 이후의 생활을 한 번 기록해보고 싶었다. 마사토끼님이 포스타입에 수익을 매 월 공개하는 것과 같이 말이다. (마사토끼 팬입니다.)


사람이 불행한 것은 남과 비교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교를 하지 않고 살 수는 없다. 사람은 어찌 되었든 향상심이 있고 자기반성을 해야 하는데, 내가 잘하고 있는지 아닌지 판단하는 것은 비교 상대가 없이는 참 어렵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에서 발표한 2022년 월평균 임금(명목)은 352만 6,000원이다. 하나은행이 2021년에 내놓은 보고서에는 4대 광역시에 거주하는 40대의 평균 세후소득이 월 468만 원이며 총자산은 평균 4억 1천만 원이라고 되어있다. 그런데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전체 평균이 궁금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와 시작점이 비슷했던 사람들과 비교를 해야 내 성취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소위 명문대 학부 졸업 후 유학을 했고

요즘 한창 임금 인플레를 불러일으키는 직종인 Software Engineer이며

남들이 부럽다 하는 대기업에 입사하여

회사에 다니는 동안 상위 고과 받고 남보다 조금 빠른 승진을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 그리 들리는 소문은 나 빼고 모두 쟁쟁한지. 누구는 5-6년 차부터 연봉 1억을 넘기고, 30대에 임원이 되고, 누구는 서울에 아파트가 여러 채이고, 누구는 주식과 코인으로 수십억의 이익을 보았다는데, 허세인지 예외적인 사람들만 떠드는 것인지도 파악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더더욱, 비슷한 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의 이후 행보와 비슷한 회사에 입사했던 사람들의 이후 행보가 궁금하다. 왜냐하면 그 이후의 행보가 진정한 내 능력이므로, 내가 그저 스펙만 그럴듯하게 만들었던 사람인지 학교와 회사의 후광 없이도 가치 있는 사람인지 알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야기를 써 본다. 저러한 배경으로 40대 중반을 넘기도록 일을 했던 사람이 모을 수 있었던 자산과, 이 정도 모았으면 갑자기 백수가 되었을 때도 살만한지, 은퇴하려면 대체 어느 정도를 모아야 하는지를. 대기업 임원을 하다가 택시기사가 되고 아파트 경비원이 되었다는 기사가 과연 내 이야기가 될 것인지. 나와 비슷한 누군가에게는 참고가 될 수도, 그렇지 않은 누군가에게는 부러울 수도 있고 한심할 수도 있을 이야기이다. 나라면 최소한 저것보다는 더 잘 살 수 있겠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다행이다.

 

출생 인구가 급감하고 노령 은퇴자는 급증하고 빈부 격차는 심해지는 이 상황에서, 국가의 정책은 나와 같은 상황의 사람 - 일하지 않는, 소비를 최소화하는, 병원을 자주 가는, 1인 가구 - 에게 점점 더 불이익을 주고자 할 것이다. 장밋빛 미래가 아닐 수 있음을 알지만, 그래도 잘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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