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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 Jun 18. 2023

연 1억의 저축을 포기할 수 있을까

퇴사를 하려고 한다. 당분간은 경제활동을 하지 않을 생각이니 조기은퇴이다.


대학 졸업  대기업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하기 시작했다.  시장에서 가장 트렌디한 - 다른 말로는 투자금이 몰리는 - 분야에서 일을 해왔다. 18년이 흘렀고 나는 어느덧 마흔 훌쩍 넘겼다. 그리고 드디어 1년에 1억을 저축할  있는 연봉 수준에 이르렀다. 사실여부는   없으나, 요즘은 2억은 받아야 꿈의 연봉이며 30 초반 개발자도 1억을 받는다고 하니 자랑할만한 수준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열심히 달려서 목표에 다가갔더니 누군가가 결승점을 옮겨버린 기분이지만, 가진 것에 감사하고 어쭙잖게 쓸데없는 말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지난 18년간의 세전 소득과 자산은 대략적으로 아래와 같다. 10년 차에 스타트업에 뛰어들었는데, 되돌아보니 소득으로 보면 1년 차에서 다시 시작한 셈이었다. 그렇게 9년을 다시 보내고서야 대기업을 그만둘 당시의 연봉을 따라잡았다. 그리고 올해 2023년, 연말까지 다니면 2억의 근로소득을 얻게 된다.

My Path to Financial Independence as a Software Engineer 이 블로그를 보고 나도 수입과 자산을 한 번 정리해보고 싶었다.


돌이켜보면, 첫 직장에서 돈을 많이 모았다. 당시 한 달 생활비가 50만 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교통비가 들지 않았고 밥은 회사에서 먹었고, 무엇보다 엄청난 야근으로 따로 돈을 쓸 시간이 없었으니. 그리고 치트키라 할 수 있는 것이, 회사생활을 하기 전에 이미 모은 돈이 있어서 경기도에 전세를 얻을 수 있었다. 미국 이공계 대학원의 조교 월급은 생활비를 충당하고도 남을 만큼 꽤 넉넉했기 때문이다.


1억은 더 이상 꿈의 연봉이 아니라지만, 나는 아직 한 번도 계약연봉으로 1억을 넘긴 적도, 실수령액으로 600만 원 이상 받은 적도 없다. 지금 월 수령액은 공제 후 580만 원 정도이다. 이 중 최소 400만 원씩을 적금에 넣는다. 여유가 있으면 IRP와 주식계좌에도 넣는다. 아이가 없는 1인 가구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 게다. 그리고 성과급 형식으로 한 번에 받는 금액이 세후 5~6천만 원이니 이를 더하면 근로소득으로 1년에 1억을 저축한다.


물론 금융자산도 증식을 한다. 현재 금융자산은 예금 8.5억, 중금채 6.5억, 주식 3억으로 총 18억이다. 1년에 주식 배당으로 세후 약 4백만 원을 받으며, 15억의 이자수익은 세후 3%로 가정하면 4천5백만 원을 기대할 수 있다.


즉, 근로소득과 금융소득을 합치면 지금은 1년에 현금이 1억 5천만 원 가까이 쌓인다. 적극적으로 무엇을 하지 않아도 쌓이는 돈. 출근만 하면 쌓이는 돈. 앞으로 5년을 더 일하면 7억 5천, 10년을 일하면 15억이 모이는데 이를 포기하는 것이 맞을까? 무엇보다도 나와 비슷한 배경을 가진 내 친구들이 55세, 65세, 75세까지 꾸준히 일을 할 때 내가 얼마나 많이 뒤처질 것인가가 가장 두렵다. 자산 수십억의 차이가 나면 우리는 여전히 친구일까. 나는 친구들의 자식이 결혼할 때 축의금을 아까워하지 않고 낼 수나 있을까?


지금 회사를 그만두면 근로소득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금융소득으로 생활비를 충당해야 하므로 더 이상의 자산 증식은 어렵다. 금리는 떨어질 것이고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화폐가치 하락까지 고려하면 마음이 편할 수가 없다. 여기에 퇴직연금과 국민연금 납부액도 사라지니 연간 1억 6-7천 정도의 손실은 감안해야 한다. 연봉이 2억인데 왜 기회비용이 그보다 적냐고 하면, 세금과 건강보험료를 내는 만큼은 내 손에 덜 들어오니까 대충 계산이 맞을 테지.


작은 눈덩이를 굴리고 굴려 이제야 커지는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했는데 이 시점에 모든 걸 중단하려고 한다. 나는 좋은 결정을 내리는 것일까?


“한 시간만 더 견디자. 그걸로 평생의 이득을 버는 셈이니까.” 그는 계속해서 같은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러다가 마침내 왼쪽으로 돌아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눈앞에 촉촉한 저지대가 나타났다. 그 땅을 버리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으므로, 그는 앞으로 계속 나아갔다.  
- 『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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