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은 꼬박 밤을 새웠다. 수요일도 목요일도 잠을 자지 못해서 벌써 3일째 아침 버스가 오가는 소리를 듣고서야 잠이 든다. 피곤하다. 내 잠을 방해한 것만으로도 욕이 튀어나온다.
나는 정치 고관여층은 아니다. 무관심한 쪽에 가깝다.
그러나 정치역학에 관심이 없다고 하여 내 가치관이 없다는 것은 아니니까, 나의 가치관과 양심이 납득 가능한 쪽을 지지한다. 가치관과 도덕의 영역이기에 그것이 훼손되는 상황에서는 크게 분노한다. 가치관은 경제적 이해득실보다 더 크게 마음을 흔드는 법이다.
나는 민정당계 정당에 투표한 적이 없다. 늘 민주당계 아니면 진보 정당을 선택했다. 보수와 진보, 좌파와 우파로 가르는 것에는 조금 거부감이 있다. 그저, 내가 남보다 뛰어나지 않음을 알고, 내가 가진 것들은 운이 좋아 얻게 된 것임을 아니,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에게 측은지심이 들고 조금이라도 나누고 싶어 진다면 다른 선택을 하기는 어렵지 아니한가.
나 스스로는 자신이 충분히 보수적이라고 생각하며, 민주당 역시 충분히 보수적인 정당이라고 생각한다. 한창 혈기 넘치던 20대부터 30대 초반까지는 진보정당을 종종 선택했는데, 작금의 진보 궤멸 상황은 좀 안타깝다. 나는 진보적이지 않지만, 누군가는 진보를 위해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화요일 밤부터 며칠 새 드는 감정은 미묘하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의 (사실 이들의 관계도 몰랐다) 성명서는 보는 순간 전율이 흘렀다. 운동권 세대가 아닌지라 저러한 언어적 표현과 감성을 현실에서 마주칠 일이 없었는데, 이러니 저러니 말이 많아도 결국 긴급 상황에서 믿을 수 있는 건 이들밖에 없구나 싶었다. 총 든 군인 앞에 앞장서서 뛰어나가겠다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이를 두고 건수 잡았네 어쩌네 운운하며 비아냥 거리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남의 노고와 희생에 무임승차하면서 감사할 줄도 모르는 파렴치한 이들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각국 노동조합의 지지선언. 노동조합과 이게 대체 무슨 상관인가 웬 오지랖인가 싶으면서도 남의 나라 일에 발 벗고 나서주는 것에는 정말 감사할 수밖에 없다. 역시, 위기 상황이 오면 기댈 수 있는 것은 이들밖에 없구나.
그리고 미국의 이례적으로 강한 경고성 발언. 어렸을 때는 그야말로 '세계의 경찰 미국'에 대한 굳건한 동경과 믿음이 있었다. 냉전시대였으니 당연하다. 자라면서 이러저러 비판적 견해도 갖게 되었지만, 지금 이 순간, 역시나 나라에 우환이 닥치면 믿을 건 미국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면 미국이 개입해서 제어해 주길 기대해야 하는구나, 미국이 나서주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겠구나.
이런 생각의 끝에 이어지는 무기력함.
참으로 하찮은 결말이다만, 평소와 달리 대낮부터 집안의 전등을 다 켜놓고, 모니터에 뮤직비디오를 계속 틀어 놓고, 난방을 평소보다 높이고, 달달한 케이크를 잔뜩 사 왔다. 절약, 절약이 무슨 소용인가. 자기 효용감이 떨어지면서,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자포자기하는 심정이 된다.
새벽에 바로 국회 앞으로 뛰어나간 일반 시민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나는 설혹 여의도에 살고 있었다 한들 절대로 군인 앞에 나서지 않았을 것이라, 스스로의 하찮음에 더욱 무기력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