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털 패딩
아침에 지하철 열차 안에서 화려한 패턴의 패딩을 입은 사람을 보았다. 무늬 자체도 화려할뿐더러 보색이 섞이고 명도 대비가 높아 눈에 확 띄었다. 유행이란 묘하다. 옷에 관심 없는 나도 뭐가 어떻게 다른지 정확한 차이를 모르면서도 최신 상품인지 과거 오래전에 유행할 때 나왔던 상품인지는 기가 막히게 알아챌 수 있으니. 옷장에 오랫동안 머물렀던 옷을 입은 듯한 그는 건대입구역에서 내렸다. 요즘 저 패턴이 적어도 일반인 사이에서 다시 유행하는 것은 아닌 것 같으니 그저 자기 취향이 확고한 사람이려니.
그가 내리고 나서 한참 머리를 굴렸다. 저 패턴에 이름이 있었는데. 생각이 안 난다. 사진이라도 슬쩍 찍어 놓을 걸, 그러면 이미지 검색이 될 텐데. 대 여섯 정거장을 지나친 후에야 퍼뜩 떠올랐다. 페이즐리!
내 기억으로는 80년대 중 후반, 그때 오리털 패딩이 등장했다. 기억이 명확하지는 않고 아마 일부는 왜곡되어 있을 텐데, 아침 일찍 당번이 조개탄을 받아와 난로에 불을 지피던 장면이 생각난다. 할당받은 땔감이 다 타오르면 다 먹은 우유팩을 넣어 불을 살렸다. 난로 위에는 언제나 커다란 양은 주전자가 올려져 있었다. 보글보글 물이 끓으며 주둥이로 수증기를 내뿜는 장면은 보기만 해도 훈훈했다. 그렇다고 드라마에서 보듯 양은 도시락을 난로 위에 올려 데우는 시절은 아니었다. 일제 코끼리 보온도시락이 보급되어 있었다.
어느 날인가 반에 오리털 잠바라는 걸 입는 아이들이 한 둘 생겼다. 오리털 잠바를 입고 있으면 후끈후끈 더워서 교실에서 옷을 반쯤 뒤로 젖히고 있는다더라. 엄마 엄마, 오리털 잠바를 입으면 겨울에도 땀이 난데요. 마치 요즈음의 등골브레이커 패딩처럼, 나에게도 오리털 패딩이 생겼다. 내가 기억하는 첫 번째 패딩은 꽤 화사하고 밝은 색상의 페이즐리 무늬였다. 색이 흐릿하여 아주 요란하지는 않았다. 아이보리 바탕에 연한 보라색의 무늬와 손목의 하얀색 시보리가 유독 기억에 남는다.
어쩌면 내가 기억하는 그 장면이, 손이 시려서 어깨를 움츠리고 소매를 쭈욱 늘려 소맷단으로 손등을 덮고 있던 그 장면, 그때 교실에서 입고 있던 그 옷이 오리털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페이즐리 무늬가 아니었을지도, 아이보리도 아니고 보라색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소맷단의 시보리가 하얀색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나는 그 옷의 패턴을 무척 좋아했었다.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보라색 페이즐리 오리털 패딩은, 내가 중학생, 어쩌면 고등학생,이었을 때 어머니가 입던 양면 패딩의 무늬였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거 내 옷이었던가. 허벅지까지 내려오는 두툼한 패딩, 라쿤털이 달린 모자가 있던 그 옷이 누구 거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