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은 벌레가 없다고 한다
비가 올 때면 늘 생각나는 장면이 있다. 미국에서 대학원 다니던 시절, 학교 근처 저렴한 기숙사가 있었는데 과거 병원으로 쓰이던 건물이라고 들었다. 한국에서 말하는 복도식 아파트. 물론 아파트라고 해봐야 3층 정도 되는 건물이었다. 내가 정작 그 기숙사에 살았던가는 기억이 가물한데, 그 기숙사의 몇몇 장면은 의외로 기억이 많이 난다.
어느 비 오는 여름 저녁 창문과 현관문을 모두 열고 빗소리를 들었다. 방 주인이 말했다, '이렇게 비 오는 날은 문 열어도 벌레가 없어요. 비 오기 전에 다 숨거든요.' 그 말은 '비가 오면 벌레가 없다'는 명제가 되어 뇌리에 남았고, 이어 '비가 오면 문을 열어야 한다'는 당위가 되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나는 동안 한결같이, 비 오는 날이면 창문을 열고, 종종 방충망마저 열어버리고 빗소리를 듣는다.
나중에 찾아보니 모기는 빗방울에 맞아도 죽지 않으며 빗속을 날아다닐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비 오는 날에도 모기에 물린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