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커피 선호도는 핸드드립 (요즘은 필터커피라는 말을 더 힙하다고 여기는 듯), 아메리카노, 라떼 순이다. 유제품이 몸에 잘 안 맞아서이기도 하고, 커피에 뭔가를 섞는 것을 싫어한다. 나름 커피 근본주의자라고 할까나. 그럼에도 라떼를 가장 자주 마시는데, 두 가지 용도이다.
배고프지만 시간이 없을 때 식사 대용으로.
커피 좀 할 것 같다 싶은 가게를 만났을 때 시험 삼아.
미국에서 가장 힙하다고 하는 포틀랜드에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내 출장지는 차로 3시간 떨어진 커클랜드 당첨. 커클랜드라는 도시가 있는 줄 이때 처음 알았다. 여태껏 커클랜드는 약간 저렴한 상품 브랜드로만 알고 있었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 동네에 있는 다이소 비슷한 생활용품점에 가면 커클랜드라는 브랜드를 단 상품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회사에서 가라니까 커클랜드에 갔다. 당연히 별거 없는 도시인데 의외로 마음에 쏙 들었다. 별거 없는 와중에도 깨알같이 예쁜 카페거리와 쇼핑구역이 있었다. 그리고 중심지 바로 옆에 바다 같은 워싱턴 호수가 있었다. 접근성이 너무 좋아서 서울 사람이 석촌호수나 한강공원 가는 것보다 훨씬, 비교할 수 없이 손쉬웠다.
내가 묵었던 호텔은 좀 외곽이었는데, 미팅에서 만난 상대가 위치를 듣더니 약간 안쓰럽다는 듯이 나를 봤다. 비즈니스로 오는 사람들이 의례 선택하는 중심지의 호텔이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 호텔은 아주 비쌌다.
내가 묵고 있는 그 외곽 지역에도 역시 깨알같이 괜찮은 카페가 있었다. 이런 외진 곳에 있을만한 카페가 아닌데 싶은. Yelp에 찾아보니 "best latte in town"이라길래 라떼를 주문했다. 한 모금 마시고는, 깜짝 놀랐다. 맛있어서, 너무 맛있어서 바리스타에게 여기 뭐 넣었냐고 진지하게 물어봤다. 불만이 있는 거라 생각했는지 바리스타가 살짝 당황했는데, 맛있다고, 커피랑 우유만으로 어떻게 이런 맛이 나냐고 이야기했더니 얼굴이 풀어지면서 기분 좋게 웃었다.
외국에서 마시는 라떼는 원래 좀 맛이 다르다. 우유 맛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는 한국에서 아직 산미 있는 원두가 유행하기 전이었는데, 그 카페에서 산미가 강한 원두로 라떼를 만들었던 거 같다. 그러니 난생처음 먹어 보는 라떼 맛이었을 수밖에.
그날 이후로 라떼는 카페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었다. 사실은 판단할 정도의 미각 재주가 있는 것은 아니고 마음에 드는 카페를 발견했을 때 치르는 일종의 의식이다. 우유가 안 맞는 나에게는 요즘 두유나 오트밀크 옵션이 흔해져서 다행이긴 한데, 어쩐지 기억 속의 라떼 맛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