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하게도 9월 1일부터 더위가 확 꺾였다. 여전히 기온도 습도도 높지만 묘하게 덜 덥다. 늙은 햇살은 적당히 뭉근하고 여유가 있다. 9월 1일을 기해 에어컨 코드를 뽑아도 되겠다 싶었지만 결국 뽑지 못했다. 이상하지, 낮에는 기온이 30도를 넘어도 크게 덥지 않다. 그런데 해가 지고 나면 26~28도에도 갑갑하고 땀이 난다. 왜일까, 생체리듬 탓인가 학습된 기대치 탓인가. 아무튼 그리하여 잘 때는 에어컨을 약하게 틀고 아침에 일어나면 끈다. 다음 주에는 코드를 뽑고 싶은데 어떨지.
지독히 더웠지만 막상 여름이 끝나려 하니 아쉽다. 힘 빠진 햇살이 안쓰럽다. 바닥을 뒹구는 매미 시체와 때가 되면 한순간에 사라질, 아직은 눈길 닿는 곳마다 무성한 초록 빛깔들. 기시감이라고 할까. 여름이 막 시작되던 때에, 한꺼번에 올라온 연둣빛 잎들이 햇살에 반짝이는 것을 바라보다 번뜩 여름이 끝나가는 모습이 떠올라 조금 슬퍼졌었다. 이미 늙은 여름이 앞에 조용히 서 있는 것 같았다. 헵타포드의 미래시제가 이런 느낌일까.
무라카미 하루키의 『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요즘은 몸 어딘가가 아플 때면 이 또한 참 소중하다 생각한다. 움직일 수 있다는 것, 몸의 감각이 살아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이렇게 혼자 움직일 수 있는 기간이 앞으로 10년이 될지, 20년이 될지, 30년이 될지, 생각보다 짧을 수도 있는 거 아니겠나. 그렇게 생각하면 통증조차 소중하다. 평소에 붙어있는지도 신경 쓰지 않던 몸의 일부분이 존재감을 소리치니 반갑다. 아, 그래 너 거기 있었지, 근육도 신경도 살아있구나,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