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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 맛탕

외할머니의 마술

by 소소

마트의 델리코너에서 고구마 맛탕을 발견했다. 문득 옛 생각이 떠올라 집어 들었다. 쓰여있는 데로 전자레인지에 1분 30초를 데우고 한 조각 입에 넣었다. 에잉, 원래 이런 맛이었던가.


외할머니의 솜씨는 마술 같았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맛탕과 카스테라 경단. 특히나 경단은 경이로웠다. 찹쌀가루에 물을 넣고 주무르면 반죽이 된다. (이 시점에 이미 놀란다.) 동그랗게 빚어 끓는 물에 넣으면 가라앉았다가 동동 뜬다. 건져서 카스테라 가루에 굴리면 완성. 숙련된 외할머니의 솜씨로는 10분 만에 뚝딱이다. 지금도 나에게 떡이란 돈 주고 사 먹어야 할 첨단기술의 총아인데 이게 이렇게 손쉽게 슥슥 된다고?

고구마 맛탕은 꽤 자주 해주시던 간식이었다. 보드라운 속살과 바삭한 겉껍질, 달콤한 물엿에 깨. 맛탕은 식은 후 먹어야 겉이 바삭해져서 더 맛있다. 두고두고 먹을 수 있는 간식이라는 말. 탄수화물을 기름에 튀기듯 구운 후 물엿을 발랐으니 맛없을 수 없는 조합이다.

당시에는 식혜도 수정과도 전부 집에서 만들어 먹는 음식이었다. 겨울이면 커다란 양은 들통 두 개가 가스불 위에 한참을 올라가 있었다. 쌀알 때문에 식혜는 좋아하지 않았지만, 곶감을 띄운 수정과는 무척 좋아했다. 어른의 맛이었다. 위스키 온 더락을 외치는 기분으로 곶감 띄운 수정과를 졸랐다.



어린 시절의 달콤함을 되새기는데 실패했다. 고구마는 원래 굽기만 해도 맛있는 거 아닌가? 전자레인지에 찌기만 해도 기본은 하는 작물인데? 갑자기 맛탕의 존재의의를 의심하게 된다. 왜 굳이 튀기고 물엿을 붓어야 하지? 왜 그랬는데도 이렇게 맛이 없지... 이 흐물흐물한 식감은 뭐고, 왜 달지 않은 맹맛인가.

어릴 때 맛있게 먹던 그 기억은 추억보정이었나 보다. 그때는 달달한 간식이란 게 그다지 흔하지 않았으니까. 먹을게 너무 많아진 세상이라서 그런가. 내 추억은 소중하니까, 이번에 먹은 건 무효다. 추억이 훼손당하지 않게 앞으로 고구마 맛탕은 금지. 아름다운 추억으로만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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