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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 Jun 21. 2023

10년 간의 지출 기록

 Know yourself

10년간 꾸준히 소비내역을 기록해 왔다. 내가 얼마만큼의 돈을 필요로 하는지 궁금하여 시작했는데 의외로 재미가 있어서 하루도 빼먹지 않고 어느덧 10년이 되었다.


카드사와 연계해 자동으로 지출을 정리해 주는 앱이 많지만, 나는 직접 입력하는 것이 더 좋다. 카드사 연계 앱은 카테고리 분류가 잘 안 된다. 매장 결재 시 업종 분류가 부정확하기도 하고, 간편 결재앱을 사용하거나 온라인 구매를 하는 경우는 더더욱 어디에 돈을 썼는지 알 수가 없다. 게다가 신용카드가 아닌 복지포인트나 상품권 사용 금액은 누락되는데, 기록의 목적이 내 생존 비용이 얼마인지를 알기 위함이므로, 내가 카드 값을 내지 않는다 하더라도 지출에 포함시켜야 정확한 필요 생활비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아무래도 결재할 때마다 직접 입력하는 것이 내가 어디에 돈을 쓰는지, 이번 달 누적 지출 금액이 얼마인지 한 번 더 인지할 수 있어서 좋다.


데이터가 꽤 쌓였지만 정말 '먹고 사는데만' 드는 기본 생활비를 추려내는 것은 아직 감이 없다. 의외로 비정기적 지출이 자주 발생하며, 인생에서 몇 번 없을 거 같은 특이 이벤트들도 꾸준히 발생한다. 그런 항목을 제외하고 보아도 어느 달은 유달리 많이 쓰고 어느 달은 유달리 적게 쓰는 달이 있다. 내가 좀 불규칙적으로 생활하기 때문인 것 같다. 사실 이 모든 것을 합친 것이 진정한 생활비이므로 굳이 분리해서 생각할 필요가 없기는 하다. 더 줄일 수 없는 생존 필수 비용이 얼마인지 알고 싶었던 것이긴 하지만, 밥만 먹고 취미 없이 인간관계 다 끊고 살려는 것은 아니며, 또 예상외의 사건은 늘 생기는 것이 인간사이므로.


나는 앱에서 한 달 예산을 100만 원으로 맞추어 놓고 기록한다. 초과한다고 하여 별 제약이 있는 것은 아니고 앱이 빨간색으로 알려 줄 뿐이다. 보통은 예산을 초과하는 달이 더 많은데 지난달은 예외적으로 돈을 적게 썼다. 특별한 일이 없어 먹는데만 돈을 쓴 달이다. 한 달의 시작이 9일인 이유는 카드 결제 주기에 맞추기 위함이다. 월급이 들어오면 지난달 소비한 금액만큼만 결제계좌에 남기고 나머지는 예금과 CMA에 넣는다.

이 앱은 무척 만족하며 사용하고 있는데, 아쉽게도 앱스토어에서 사라져서 새로 받을 수는 없다.


기록한 데이터가 아주 정확하지는 않다. 자동납부로 등록한, 고지서 없이 조용히 출금되는 몇 항목은 입력을 안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소액 후원, 인터넷, 핸드폰 요금, 교통카드 사용 금액, 실손 보험 등인데 대략 월 20만 원 이내이다. (핸드폰 요금은 알뜰폰 사업자 유심으로 월 9,900원을 낸다.)


이렇게 모은 데이터로 그래프를 그려 보았다. 앱 데이터를 csv 파일로 내보낸 후 정리했다. (react + python으로 작성)

연간 생활비 추이를 보면 누락된 항목을 포함하더라도 2,500만 원 안쪽이다. (2023년 6월 21일 데이터)

항목별로 보면 식비 지출이 가장 큰데, 2014-2016년 사이 식료품비(Groceries) 지출이 유독 적다. 저 때는 회사에서 세끼 식대를 지원해 줘서 직접 밥을 해 먹을 일이 별로 없었던 까닭이다. (세끼를 회사에서 먹었다는 것은 일도 많았다는 뜻.)


일단 label이 잘 붙어 있는 데이터가 모이면 입맛에 맞게 이러저러 분석해 볼 수 있어서 좋다. 물론 분석한다고 사는 게 크게 달라지는 것은 아닌데 (써야 할 것을 덜 쓸 것도 아니고) 그래도 알고 대비하는 것과 아닌 것은 다르다. 때로는, 과거를 회상하는데 도움도 준다. 저 때 왜 저 항목이 유독 늘었지 생각해 보면 특정한 사건이 일어났던 시기이다. 특정 사건이 일어났을 때 어느 정도의 비용이 필요한지, 규모가 큰 비정기 지출이 어떤 주기로 발생하는지를 알면 미래 대비에 도움이 된다.


월별로 보면, 아무래도 세금 내는 달과 12월 지출이 크게 증가한다. (12월에 몰아서 기부를 한다.) 영원히 변함없을 것 같던 관리비와 재산세도 증가 추이를 보이니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고정비도 증가한다는 교훈.



벌써부터 아귀가  기 시작했다. 이전 글에서  2천만 원으로 살아보겠다 선언했으나, 지출은 최악의 경우 25 + 여유분 5 = 3천만 원까지 내심 가정하고 있으니.  사이 1천만 원의 간극이 어떻게 메워질 것인지는 나도 아직 모른다. 어차피 양쪽  버퍼를 두고 잡은 금액이라서. 1년이 지나 보면 알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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