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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 Jun 20. 2023

왜 그렇게 불안한 건데?

아주 대충의 연간 현금흐름 예측

사용 가능한 세후 수입: 2천만 원
고정 비용: 1천만 원
자산 증식 기대치: 2-3천만 원


향후 금리가 낮아지면 어려워지겠지만, 당장 2-3년 간은 세후 4-5천만 원의 금융수입을 기대할 수 있다. 일 안 하고도 신입사원 연봉을 받는다 생각하면 충분히 마음 편하게 가져도 될 텐데, 고정비와 저축 금액을 따로 떼어 놓고 연간 1천만 원에 맞추어 살겠다고 계획을 세우는 것이 좀 이상해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나 스스로도 좀 이상하니까.


월급 대부분을 저축한 것만 보아도 알겠지만, 나는 원래부터 돈을 그다지 많이 쓰지 않는다. 월 생활비 추이는 이후에 따로 언급할 테지만, 대충 1년에 2천만 원을 소비한다. 보통은 회사를 그만두면 사회생활이 줄어들고 '시발비용'도 사라져서 기존 생활비의 70% 정도로 살 수 있다고 하는데, 나의 경우는 아마 오히려 늘어날 것이다. 시간이 많아지니까. 과시형 소비를 안 하기도 하지만, 사실 일하느라 돈 쓸 시간이 없었던 면이 크다. 게다가, 회사가 복지 차원에서 지원해 주는 항목들이 은근히 꽤 많다. 차량 유지비, 실손 보험, 건강 검진 및 의료비 지급, 식대 보조, 직원할인에 복지 포인트까지. 아 참, 국민연금과 건강보험료가 가장 크다. 이런 비용을 오롯이 내가 내야 하면 대충 연간 2천5백만 원 정도는 쉽게 소비할 것으로 예상한다.


앞으로도 나는 쭈욱 연 2천5백만 원 정도로 살 자신은 있다. 65세가 되면 국민연금이 나올 테니 물가 상승을 고려해도 살만할 것이다. 단, 여기에는 아주 중요한 단서가 붙는다. 아프지 않고 내 팔다리가 멀쩡해야 한다는. 사실 병들고 아픈 건 상관없다, 어찌 되었건 마지막 순간까지 내 의지로 내 몸을 움직이고 생활할 수만 있다면.


내 할머니는 10년 정도를 요양병원에서 보냈다. 혼자서는 음식을 먹지도 화장실을 가지도 목욕을 하지도 못하는 상태로. 그런 상태로도 사람의 생명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 식물인간 같은 상태로 10년을 살지 20년을 살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개인 간병인 비용만 한 달에 4백만 원 이상 들어가는데 요양시설 비용은 또 별도이다. 우리는 그나마 종교단체에서 아는 분이 운영하는 시설이었어서 뉴스에 나오는 듯한 막장스러운 일을 겪지는 않았다. 이런 상태가 되면, 매월 7백만 원에서 천만 원가량의 돈을 태워야 인간답게, 최소한의 존엄함을 지키면서 살아있을 수가 있다. 인간답다는 것이 대단한 것이 아니다. 기저귀에 똥을 싼 채로 일주일에 두 번 있는 목욕을 기다려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그런 정도의 것들.


회사 동료의 할아버지는 비용이 저렴한 요양원에 계신데, 몇 번 방문해 본 동료의 소감은 정말 너무 비참하다는 것이었다. 그게 어떤 건 지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에, 내 팔다리가 지금처럼 멀쩡할 것을 가정하고 평생의 생활비를 산정할 수가 없다. 최악의 경우는 연간 1억을 쓰면서도 비참하게, 10년이고 20년이고 숨이 붙어있을 수 있으니. 돈으로 행복을 살 수는 없지만 최소한의 존엄을 유지하는 데는 도움이 된다. 그래서 원금에 손대지 않고, 인플레이션만큼은 계속 불려 나가고 싶은 것이다. 직접 그런 일을 겪어보지 않았다면 나도 희망 회로를 돌리고 있었을 텐데. 그러기에는 요양병원에 있는 노인들의 모습을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이 컸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1-2천만 원으로도    있음을 확인하면, 뜻밖의 불행 - 돈으로 인한 불행 - 이 다가올 확률은 줄어들 테니. 앞날을 알 수 없으니 더더욱  순간을 소중히 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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