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차를 내고 하루 쉰다.
평소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기가 그렇게 힘들었는데, 오늘은 6시에 일어나 샤워를 하고, 가볍게 청소기를 돌리고, 재활용 쓰레기를 내다 버리고, 빨래를 돌려놓고, 프라이팬에 버터를 녹여 식빵 두 장을 굽고, 커피를 내리고, 아침을 먹고, 빨래가 끝났다는 알림에 빨래를 꺼내 널어놓았는데도 아직 출근시간이 되지 않았다. 그냥 지금 출근할까 하는 생각마저 잠시 스친다.
빨래를 널며 빨래 바구니에 눈길이 갔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빨래 바구니는, 내가 처음으로 산 빨래 바구니이다. 이전까지는 엄마가 사준 것을 사용했었다.
자취를 시작할 때 엄마가 사준 첫 번째 빨래 바구니는 파란색 손잡이가 달린, 바닥이 좁고 긴 타원형으로 한 손으로 손잡이를 그러쥘 수 있는 가방 같은 형태의 플라스틱 바구니였다.
해외에서 살다가 다시 한국에 돌아왔을 때, 엄마가 사준 두 번째 빨래 바구니는 직사각형이었다. 직사각형의 긴 변의 양쪽에 손잡이가 붙은, 높이는 10cm 정도의 낮은 바구니였다. 첫 번째 바구니와는 달리 딱딱하여 모양이 딱 고정된 형태였다. 그걸 15년 훌쩍 넘게 쭈욱 사용하다 보니 손잡이 한쪽에 금이 가서 쪼개지기 시작했다. 양손으로 손잡이를 잡기보다는 한 손으로 쥐고 들어 올리다 보니 한쪽 손잡이에 결국 금이 갔다. 그럴 만큼 충분히 오랜 세월이 지나긴 했지. 색상도 조금 노랗게 변질이 되고 있었고, 드디어 손잡이가 완전히 떨어져 나가고서야 새로운 빨래 바구니를 샀다.
이번에 내가 산 바구니는 플라스틱이지만 고무처럼 말랑 말랑한 재질이다. 위가 바닥보다 넓어지는 원통형으로, 비록 말랑말랑하기는 하지만 역시 손잡이 간의 거리가 멀다 보니 한 손으로 그러잡기보다는 여전히 한쪽 손잡이와 구멍에 손을 넣어 쥐게 된다. 그래도 탄성이 있고 무게 중심이 멀지 않아 쉽게 망가질 것 같지는 않다.
그러고 보니, 지금 사용하고 있는 빨래 건조대도 두 번째 직사각형 빨래 바구니와 함께 엄마가 구비해 준 것이었다. 오래전 건조대의 걸이 대 하나가 떨어져 나와서 빠진 채로 사용을 하다가, 지금 집으로 이사 올 때 버리려는 걸 엄마가 떨어져 나온 봉을 잘 펼치더니 다시 꽂아 놓았다. 조금 찌그러지기는 했지만 그럴듯하여서 새로 사지 않고 지금까지 계속 사용하고 있다.
간혹 마트에 가면 빨래 건조대를 쳐다본다. 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것이 아닌가 싶겠지만, 이상하게도 지금 사용하는 것보다 더 내 마음에 딱 드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비슷비슷하지 않다. 다 다르게 생겼는데, 아주 사소한 것들이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언젠가 시간이 흐르면, 저 빨래 건조대도 수명을 다 하는 날이 오겠지.
사람의 세포는 계속 죽고 새로 생기기 때문에 일정 시간이 지나면 몸의 대부분이 교체된다고 한다. 나를 둘러싼 것들도 그렇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이후로, 엄마가 사주었던 물건들이 하나하나 교체되는 것을 보며 생각한다. 내가 물건을 오래오래 십 년이고 이십 년이고 가지고 있는 사람이긴 하지만, 시간이 더 흐르고 흘러 언젠가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전부 교체되어 버린 날이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