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5일 오후 4시. 33도)
집 앞 산책로 길을 따라 바람개비가 늘어서 있는데 꼼짝도 하지 않고 멈춰있다. 자전거 한 대가 스쳐 지나가자 그중 딱 하나의 바람개비가 살짝 돌아간다.
선풍기에 알록달록한 망사를 씌우던 시절, 머리를 감고 나면 선풍기 앞에 등을 돌리고 앉아 머리를 말리던 시절, 선풍기를 켰다 하면 꼭 한 번은 얼굴을 들이대고 아아~ 소리를 내며 키득거리던 시절.
바람 한 점 없는 무더운 여름이면 곧잘 뛰었다. 달릴 때면 바람이 불어와 시원했으니까. 조금 더 조금 더 바람을 더 만들어내기 위해 계속 뛰었다. 그러다가 멈추면 몸에 열이 확 올라왔다. 열기 때문에 바람이 더 간절해지고 그래서 다시 달려야 했다. 그러나 인생의 모든 것이 그렇듯 언젠가는 멈추어야 했고, 잔뜩 달구어진 몸으로 집에 돌아와 '찬물 한 바가지를 끼얹고' 마룻바닥에 드러누웠으면 좋았겠지만, 나는 아무리 더워도 샤워는 뜨거운 물에 해야만 하는 사람이라, 샤워를 하고 나오면 기껏 땀을 다 닦아내고 개운해졌음에도 나오자마자 다시 체온이 오르고 땀이 배어 열기가 가라앉기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선풍기 앞에서 아아~ 소리를 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