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몽블랑

by 소소

친구와 길을 걷다가 새로 생긴 카페에 들어갔다. 새로 생겨서인지 메뉴판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고 커피 외에는 딱히 먹을만한 것도 없었다. 옆에 있는 제과점에서 사가지고 와 먹어도 된다고 했다. 친구가 가서 사 온 것은 몽블랑 케이크였다. 와인잔 비슷한 그릇에 담겨 있었고 밤 크림이 올라가 있는 무스 케이크 형태였다. 나는 몽블랑 케이크라는 것을 이때 처음 보았고, 한 입 떠서 먹어 보고는 실망했다. 밤크림 특유의 향이 이상했다. 럼주의 알코올 향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와 맛있다. 제대로 만들었네, 그렇지?"
"어 그러네."

자신 있게 말하는 친구의 분위기에 슬쩍 기가 죽어 동의했다. 내가 먼저 소감을 말하지 않아 다행이다. 마치 나도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맞장구치며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몽블랑은 맛있는 음식이다. 지금 이 맛이 맛있는 몽블랑이다.'

카페 주인은 손님도 없고 주문도 없고 메뉴도 없는데 주방에서 뭔가 계속 바쁘게 일을 했고 우리는 슬쩍 눈치를 보며 '근데 여기 주인은 왜 바쁜 거지?' 소곤대며 살짝 웃었다. 노랗게 페인트 칠한 냉장고부터 구석구석 붙어 있는 타일까지, 그저 유행하는 인테리어가 아니라 주인이 세심히 자신의 취향을 반영해 고른 태가 났다. 예쁘고 정겨운 장소였다. 우리는 그 작은 카페가 참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나오는 길에 "근데 여기 금방 망할 것 같아" 말하며 둘 다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취향을 가진 것과 장사를 잘하는 것은 별개이니까. 정말로 불과 몇 개월 후에 그 카페는 사라졌다.



가을이 되면 의례히 한 번씩 몽블랑을 찾아 먹는다. 사실은 아직도 맛있는 몽블랑이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좌) 키이로의 벚꽃 몽블랑. 우) 카페 앙떼띠의 몽블랑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사물의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