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도착했다.
다브뉴 강에 있는 중저가의 선상 호텔 겸 호스텔에 묵었다. 배 지하에 있는 창문 없는 방이 호스텔이었는데, 그래도 나름 1인실을 예약했다. 비수기라 사람이 없어 그랬는지 생색도 내지 않고 창문 있는 개인 욕실이 딸린 1인용 호텔 방을 내주었다. 이렇게 운이 좋을 수가.
아침에 나가면서 침대 옆에 팁을 놓고 나갔는데 돌아와 보니 돈이 그대로 놓여있었다. 세계에서 팁을 주는 나라는 미국밖에 없다는데 아마도 맞는 말인 거 같다.
부다페스트에는 소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맥도널드 매장이 있다고 했다. 그곳에 가보지는 못했고 근처 다른 맥도널드 매장에 들렀다. 당시 유럽의 패스트푸드 매장은 패스트푸드라기보다는 아늑한 비스트로 분위기였던지라 역시 유럽은 다르다며 감탄하곤 했다. 부다페스트의 맥도널드는 심지어 체크무늬 테이블보가 덮여 있었다! 카운터에서 주문을 하고 자리에 앉으면 주문받은 점원이 자리로 음식을 가져다주었다. 주문 번호표를 따로 나누어 주지도 않았는데 대체 어떻게 기억하고 내가 앉은 테이블을 찾아 가져다주는지 경이로웠다.
나보다 일찍 헝가리를 방문했던 친구는, 헝가리가 한국만큼은 사는 나라인데 가난하다 생각하고 무시하는 한국인들이 우습다고 했다. 그 말대로였다. 부다페스트는 도시화가 진행된 큰, 서울이나 인천, 혹은 방콕 같은 느낌의 도시였다. 사실 긍정적인 의미의 말은 아니다. 규모가 큰 콘크리트 구조물이 있고, 보행자 친화적이지 않은 거대한 도로가 가로지르는 곳.
호텔은 조금 외각에 있었다. 도심에 가려면 고가도로가 있는 큰 도로를 횡단해야 했다. 횡단보도는 있지만 '딱히 사람이 다니는 길은 아니야'라고 소리치는 듯한 길. 나는 그때 조금 피곤했던 것 같다. 추운 날씨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 속에서 삭막했다.
헝가리는 온천으로 유명한지라, 수영복을 대여해 주는 도심에 있는 오래된 한 노상 온천에 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머리만 시원하고 몸은 푹 익히는 그런 노상온천이 아니었다. 수온이 체온보다 살짝 높은 정도. 겨울에 있기에는 너무 추웠다. 으슬으슬 몸살이 날 것 같은 상태로 온천을 나왔다. 처량했다.
도심은 사람이 없고 조용했다. 실제로 사람이 없었는지, 내가 지쳐있어서 그렇게 느꼈던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 장소의 소리와 장면, 색채가 전혀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그러다가 프랑스 문화원을 발견했다. 헝가리에 오기 직전에 파리에 머물렀던 터라, 그게 뭐라고 고향에 온 듯 반가웠다. 문화원 안에는 작은 카페테리아가 있었는데, 따스한 불빛, 노래하듯 들리는 대화소리, 밝은 색채의 스웨터를 입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바깥과 대비되는 따듯함이 있었다. 간간히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 그들의 언어로 내가 음식을 주문할 수 있는 곳, 들어서자 그제야 안전한 곳에 들어온 듯한 안도감이 밀려왔다.
그곳에서 주문한 것은 커피와 크로크마담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크로크마담을 처음 먹어본 곳은 프랑스가 아니라 헝가리였다. 지금도 종종 스타벅스에 가서 크로크마담을 시켜 먹는다. 맛도 없고 그때의 기분도 나지 않지만, 그 당시 내 가라앉은 기분을 건져 올려준 그 크로크마담에게 건네는 인사이다. 안녕, 나는 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