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에 이상하게 행복해질 때가 있다. 패스트푸드점의 1500원짜리 아이스커피를 마시는데 너무 맛있을 때라던가, 청경채를 넣은 라면을 먹을 때.
파리에 잠깐 머무르던 시절이었다. 중국인들이 많이 사는 13구의 큰 건물의 스튜디오에서 살았다. 조그마한 방과 아주 조그마한 키친네트, 샤워실로 이루어져 있었다. 생각해 보면 5평쯤 되려나. 부엌이 아주 아주 작아서, 작은 개수대와 작은 가스레인지만으로 가득 차는 그런 크기였다. 한국 일반적인 아파트의 싱크볼 하나 정도의 크기였을까.
근처에 까르푸가 있어서 자주 들렀는데, 라면과 청경채를 사 와 자주 먹었다. 해외에서 자주 보이는, 건더기 없고 저렴하고 양 적은 일본 봉지 라면이었다. 라면에 뭔가 넣어야 할 것 같은데 가장 흔하게 보이는 채소가 청경채였다. 청경채는 그때나 지금이나 중국 요리, 그중에서도 비싼 중국요리에 들어가는 채소라는 인식이 있었다. 라면에 청경채를 넣으니 그럴듯한 이국 요리를 먹는 느낌도 들고, 채소 섭취도 했다는 뿌듯함과 함께 라면에 청경채 넣을 생각을 한 내가 대견하여 무척 행복했다. 적은 돈으로 무언가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었을 때의 기쁨은 비싼 것을 구매했을 때의 만족과는 다른 뿌듯함이 있다. 돈이 부린 재주가 아니라 오롯이 나의 재주이니 말이다.
물가가 정말 많이 뛰었다. 채소 가격이 어마어마하게 올랐다. 마트에 가서 제일 저렴하고 오래 두고 먹을만한 푸른 잎채소를 찾는데 청경채가 눈에 자주 띈다. 청경채가 원래 흔한 채소였나? 요즘 들어 왠지 자주 보이는 듯하다. 한국에서는 한 번도 사본 적이 없는 채소 청경채, 중국음식점에 가서야 먹게 되는 청경채.
파리를 떠난 이후로는 이상하게도 청경채를 한 번도 산 적이 없다. 오늘도 마트의 청경채를 보고는 그냥 지나친다. 옛 생각을 잠시 떠올리며. 언젠가 파리에 다시 가게 된다면 그때야 말로 라면에 청경채를 다시 한번 먹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