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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 Dec 20. 2023

테라로사, 리나스, 서브웨이

그날은, 엄마가 티켓이 생겼다고 예술의 전당에 공연을 보러 가자고 했다.


공연 시작 전이라 당연히 사람이 넘쳐났고,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가기에는 시간이 애매했다. 로비에 리나스라는 샌드위치 가게가 있길래 간단히 요기하기로 했다. 정말 별로였다. 내용도 부실한 파니니를 전자레인지에 데워 종이접시에 주었으니. 저렴한 카페가 고속도로 휴게소처럼 장소값으로 값을 올려 받는구나 생각했다. 나중에 아주 나중에 알고 보니 리나스는 나름 고급 브랜드였다. 회사의 한 동료는 서브웨이는 쓰레기라 혹평하며 점심에 리나스 샌드위치를 즐겨 먹었다. 그러나 첫인상은 중요하니, 나에게 리나스는 언제나 서브웨이보다 못한 샌드위치였다.


서브웨이는 내가 어릴 때 자주 먹었다. 맛살이 들어간 샌드위치를 좋아했다고 기억한다. 정확히는 내가 좋아한다고 엄마가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 내가 집에 있을 때 엄마가 자주 사다 놓고는 했다. 이상하게도 서브웨이는, 성인이 된 이후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로 다시 가고 싶다거나 하는 마음이 들지는 않는다. 회사 바로 앞에 매장이 있어서 모닝세트를 꽤 자주 먹기는 했는데, 매장은 갈 때마다 낯설었다.


공연을 보고 나와 테라로사에서 커피를 마셨다. 역시나 사람이 바글바글하여서 커피맛을 느낄 여유는 없었다. 커피 맛은 꽤 썼다. 리나스와 마찬가지로 장소값으로 비싸게 받는 카페 정도로 인식했었다. 다시 아주 오랜 후에야, 테라로사라는 브랜드를 알게 되었고, 그날 예술의 전당에서 갔던 카페가 그 카페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오늘 미쉘 들라크루아 전시를 보러 오랜만에 예술의 전당에 갔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여전히 자리 잡고 있는 테라로사가 보였다. 그게 언제였을까. 모르긴 해도 10년은 더 전이었을 텐데. 한 장소에 한 가게가 이리 오래 있기도 힘들 텐데. 오랜 시간을 있었구나. 앞으로도 더 오래, 10년은 더 그 자리에 있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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