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ařené víno 체코어로 글뤼바인/뱅쇼를 이르는 말이다. 프라하에서 기차를 타고 체스키 크룸로프로 이동 중이었다. 아침 일찍 중간역인 체스키 부데요비체에 내려 도시를 둘러보았다. 역은 아주 작았는데 깨끗했고 조그만 스탠딩 커피바가 있었다. 맥주가 유명하다고 하여 역사 안에서 지역 맥주부터 한 잔 하고 길을 나섰다. 역에서 마시는 아침 술만큼 여행 기분이 나는 건 없다. 추우니까 몸을 데워야 한다는 핑계였다.
춥고 바람이 강한 거리를 걸었다. 장갑도, 목도리도, 모자도 없었다. 한 오르막길에 있는 식당 앞에 커다란 솥이 있고 Svařené víno라는 명패가 붙어 있었다. 와인을 끊이고 있었고 종이컵에 한 국자씩 담아 팔았다. 따듯한 와인이 든 종이컵을 손으로 감싸고 한 모금씩 마시며 길을 걷자니 무척 행복했다. 얼어붙은 손끝에 감각이 돌아왔다. 이렇게 작은 온기 하나가 나를 돌봐주는구나. 왜 동유럽 사람들이 술을 많이 마시는지 이해했다. 추위를 견디려면 따듯하게 데운 술이 최고였던 것이다.
문득 생각이 나서, 한 때 집에서 와인에 꿀, 오렌지, 계피 스틱을 넣고 끓여본 적이 있다. 성공했다고 말하긴 뭐 하지만, 어차피 모든 것은 기분이니까. 양은 냄비에 한가득 끓여 국자로 컵에 퍼담으며 운치를 즐겨 보았다. 이제는 시간이 흐르고 흘러 어느새 프랜차이즈 카페에서도 겨울 메뉴로 뱅쇼를 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