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페낭으로 가는 길에 Ipoh에 들렀다. 여행지로 많이 알려진 곳이 아니었음에도 방문한 이유는 단 하나, 음식이 맛있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별칭이 '미식도시'이며 쿠알라룸푸르에서 흔히 보이는 여러 음식이 Ipoh에서 유래했다 하니 꼭 가보고 싶었다. 도시 이름을 딴 Ipoh Noodle이라는 메뉴가 푸드코드에 있을 정도이니 우리로 치면 전주 정도의 위상일까.
나는 말레이시아 음식, 그중에서도 중국계 뇨냐 음식을 아주 좋아했는데, 그중에는 국적이 의아한 것들도 있다. 예를 들면 파인애플 케이크와 커스터드 푸딩. 보통 파인애플 케이크라고 하면 대만을 떠올리고 커스터드 푸딩이라면 일본을 떠올릴 테지만, 나에게는 둘 다 말레이시아의 대표 디저트이다.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먼저 접했기 때문이다. Melaka의 많은 가게 유리창에 '파인애플 케이크'가 쓰여있었으니 지역 명물인 듯싶었다. 커스터드 푸딩 혹은 캐러멜 커스터드는 Ipoh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말레이시아에서 카페, 혹은 코피티암이라고 부르는 가게들이 있는데, 전통시장 버전의 푸드코트라 할 수 있다. 노점상처럼 작은 가게 스탠드들이 삥 둘러 음식을 만든다. 장소 제공자는 커피를 파는데, 그릇 수거 및 설거지, 테이블 청소 등을 담당한다. 그래서 여기서는 자리에 앉으면 커피부터 필수로 주문해야 한다. 현지인에게 들은 팁이 하나 있는데, 자리가 모두 차 있을 경우 테이블을 하나 정해 그 옆에 서서 기다리는 것이 에티켓이라고 한다.
한국에서 커스터드 푸딩을 파는 카페는 그다지 많지 않다. 수요가 없거나 손이 많이 가거나 둘 중 하나이겠지. 그런데 여기서는 노상 분식집 같은 코피티암에서 커스터드 푸딩을 팔았다. 포장마차에서 푸딩을 파는 느낌. 꽤 유명한지 대부분의 테이블에 푸딩이 있었다. 내 목적은 커스터드 푸딩이었는데, 간 김에 Ipoh의 명물 Fish ball noodle과 Satay도 같이 주문했다. 누들은 크게 기억에 남지는 않았고, Satay는 원래도 무척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꼬치구이는 어느 나라에나 있지만, 말레이시아 Satay의 특징은 오이와 땅콩소스가 함께 나온다는 점이다. 푸딩과 커피를 먼저 먹고 나서 입가심으로 누들과 꼬치를 먹었다.
커스터드 푸딩의 기억을 조금 더 더듬어 보면, 어린 시절 엄마가 가지고 있던 요리책이 첫 만남이다. 80년대 초에 나온 요리책이었는데, 서양요리 항목에 커스터드 푸딩 사진이 있었다. 그 사진이 뇌리에 박혀서 맛이 늘 궁금했다. 여러 현란한 사진 중에서도 그 모습이 유독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음식 같지 않은 인위적이고 단순한 모양새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