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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터

by 소소

어릴 때는 버터 대신 마가린을 먹었다. 당시에는 마가린이 몸에 더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어서 엄마는 언제나 마가린을 사다 놓았고 그것을 버터라고 불렀기에 버터인 줄만 알고 있었다. 주로 모닝빵에 딸기잼과 함께 발라 먹었다.

버터를 처음 먹어본 것은 대학에 가고 자취를 시작한 이후였다. 패밀리레스토랑에 가면 빵과 함께 버터를 내주었으니까. 맛이 달랐지만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레스토랑이니까 맛있는 거겠지. 버터와 마가린의 차이를 확실하게 인지한 것은 미국 유학시절에 'I can't believe it's not Butter' 광고를 티브이에서 보게 되면서였다. 아, 그동안 내가 먹고 살아온 것이 마가린이었다니. 이렇게나 맛이 다른데 마가린을 버터라고 부르고 살았다니. 그럼에도 딱히 먹을 일이 많지는 않았다. 내 머릿속에서 버터는 마가린의 밋밋한 맛으로 각인되어 있어 굳이 찾게 되지는 않는 까닭이었다.




그러한 나도 버터를 먹기 위해 빵을 샀던 시기가 있다. 유럽에서 머무르던 겨울이었다. 유럽 특유의 건조하고 스산한 겨울은 열량 보충을 위해 본능적으로 버터를 찾게 만들었다. 바게트나 호밀빵에 버터를 가득 바르고 포도주 또는 진하게 우린 홍차와 함께 하는 끼니가 유독 좋았다. 삼시 세끼를 그렇게 먹기도 했다. 담백한 빵과 탄닌이 가득한 음료에 버터는 무척 잘 어울렸다. 빵 반 버터 반. 버터를 먹기 위해 빵을 먹었다. 버터의 느끼함은 싸구려 포도주도 풍미 있게 만들어주었다.


조그만 옥탑방에 노란 전구를 켜 놓고, 구석에 있는 작은 책상 위에서 빵과 버터와 포도주를 드는 순간은 소설 속 주인공이 된 듯 꽤 멋진 기분이었다. 사실은 돈이 없어서였다. 외풍이 들고 난방이 중단되고 온수가 끊기는 옥탑방이었다. 하지만 헤어드라이어로 얼은 손을 녹이는 와중에 가장 저렴한 식사로도 충분한 열량과 낭만을 동시에 얻을 수 있었으니, 유럽인들은 나름 복 받은 식문화를 가졌다 할 수 있으려나.


그때 가까운 주변국들을 잠시 여행했다. 체코에서는 현지 할머니의 집에서 민박을 했는데 무척 좋았다. 방을 가득 채운, 오래된 나무 가구들이 기억에 남아있다. 아침식사로 소위 유럽식 컨티넨탈 브렉퍼스트를 내주었다. 컨티넨탈은 뭔가 모르게 부실하여서, 아침부터 뜨듯한 음식을 먹어야 하는 한국인은 언제나 아메리칸 브랙퍼스트를 선호하지 않던가. 그러나 개인 집에서 대접받는 것이라 그런지 꽤 든든하고 좋았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뭔가 더 있었을 법 하긴 한데,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담백한 빵과 버터, 그리고 예쁜 포트에 담긴 홍차였다.


헤어지기 전에 할머니와 사진을 한 장 같이 찍었다. 사진을 보내드리고 싶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가 연락처를 잃어버렸다.




요즘 한국에서 잠봉뵈르나 앙버터가 유행이다. 처음 봤을 때, 버터가 뭉텅이로 들어가 있는 것을 보고는 이게 무슨 괴이한 음식인가 싶었다. 호기심에 사 먹어 보았지만 역시 정말 별로였다. 그런데 그게 이렇게 유행하게 될 줄이야.


가끔씩 옛 기분을 느껴보려고 버터와 포도주를 사 오는데, 역시 그때 그 기분이 안 난다. 빵이 유럽빵이 아니라서일 거라 탓을 해보는데 잘 모르겠다. 그때만큼 가난하지 않아서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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