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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 Dec 08. 2023

11월 가계부

조금 버겁다

온전한 백수로 보낸 첫 달, 11월이 지나갔다. 조금 심심하다. 그런데 평생 이렇게 산 듯한 편안함이 있다. 시간이 많을 줄 알았으나 시간이 많지 않다. 예전에 하지 않았던 일들을 하니까. 오전에 두 시간 산책을 하고, 세끼 밥을 챙겨 먹고, 마트에서 야채를 조금씩 자주 사고, 운동을 하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하며 이불을 털고, 그리고 남는 시간에 책을 조금 펼치면, 그러면 이미 해가 지고 직장인들의 퇴근시간이 된다. 시간은 이상하게 늘 부족하다.


이번에도 지난달과 대동소이하게 지출했다. 생활비 60만 원에서 14만 원을 남겼다. 그러나 10월은 딱히 의식하지 않고 어려움 없이 보낸 반면, 이번 달은 의도적으로 아끼며 살았다. 돈을 쓰고 싶은데 꾹 참고 넘겼다. 먹고 싶은 것을 참았고 사고 싶은 옷을 사지 않았다. 쓸모없는 소비욕구를 누른 건지, 나를 쥐어짠 것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 어찌 되었건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을 정도이어야 지속가능할 텐데.

물건을 사는 것은 돈을 모아 하기로 원칙을 세웠다. 모든 물건엔 수명이 있으니 주기적으로 큰돈을 써야 할 때가 있을 텐데, 매달 예산에서 남긴 돈을 쌓아두었다가 그 안에서 사는 것으로 말이다. 예전처럼 일단 쓰면 한 달 후 마법같이 다시 잔고가 차오르는 것이 아니니. 원하는 것을 바로 사는 게 아니라 돈이 모일 때까지 기다린다. 빨리 사고 싶으면 많이 아껴야 한다. 이러면 돈 모이는 걸 보는 재미에 사고 싶은 것을 참는 것도 덜 괴로울 듯하다. 경험상 이렇게 모인 돈은 아까워서 또 잘 못 쓰게 되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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