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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 Dec 08. 2023

통장 쪼개기와 목적자금에 대한 생각

돈을 모으는 이유

11월 가계부를 정리하면서, 큰 지출, 특히나 유흥성 지출은 생활비에서 남은 돈을 모아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달 만에 이미 30만 원이 모인 상태라 기분이 좋았다. 나는 작은 돈 아끼고 모으는 것을 은근히 즐긴다.


생활비에서 남은 돈을 모아둘 CMA 통장을 새로 만들어야 하나 고심하다가, 굳이 그래야 할까 의문이 든다. 되돌아보면 나는 흔히 말하는 통장 쪼개기, 체크카드 사용하기, 목적자금 분리하기를 시도조차 해본 적이 없다. 지출 제어를 해야 할 정도로 지출욕구가 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즉흥적으로 많은 돈을 쓰기도 하고 쓸모없는 물건을 샀다가 후회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 빈도가 많지는 않았다고, 아마도 그랬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소득이 내 과소비 욕구보다는 높아서 그리 티가 나지 않았다.


신용카드는 체크카드처럼 사용했다. 현재의 통장 잔고보다 큰 금액은 결제하지 않았고, 할부나 대출을 받아 물건을 구매하지도 않았다. 자동차도 일시불로 구매했고, 충분히 돈이 모인 후에 전세로 집을 구했다. 특별히 돈관리에 대한 신념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무관심한 것이었다. 신용카드가 신용을 이용하여 미리 돈을 당겨 쓰는 것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고, 한 달 후에 출금이 되니 너무 아날로그적이라고, 불편하다고만 생각했다.


그리고 무언가를 사기 위해서 돈을 모은다는 개념이 나에게는 평생 없었다. 통장에 잔고가 있으면 그걸 보고 무언가를 (예를 들면 새로운 노트북을) 사는 편이었다. 재테크를 열심히 하지 않은 덕에 입출금 통장에는 놀고 있는 돈이 늘 넉넉해서 치과 진료 같은 갑자기 큰돈이 들어갈 일이 생기면 그냥 쓰면 되었다. 그러니까, 돈에 이름표를 붙이고 계좌를 분리하기보다는, 이름 없이 모이는 저수지가 있고 거기서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꺼내 쓰는 편이었다.  


목적을 가지고 돈을 모으려면 무언가를 가지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하는데, 소비를 목적으로 돈을 모은다는 것은 나에게는 이상하게 어색한 개념이다. 소비가, 물건이 목적이라니. 그리고 그렇게 차곡차곡 모은 돈이 목표금액을 달성한 후 싹 사라진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너무 불편하다. 아마 내가 여행통장을 만들어 돈을 모으면 여행을 가는 것이 아니라 모인 돈을 보존하려 예금을 들어버릴 것이다. 그러니, 정말 여행을 가고 싶으면 나는 여행용 통장에 돈을 모으면 안 되고 이름 없는 통장에 돈을 쌓아야 한다.


'가지고 싶은 것이 있어 야근비를 모으고 있다', '보너스가 들어와서 무엇을 샀다' 하는 사람을 보면 그동안 내심 부러웠다. 정확히 어떤 면이 부러운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상당히 부러웠다. 스스로에게 선뜻 선물하는 행동이, 원하는 것을 얻고 해사하게 웃는 얼굴이, 삶을 좀 더 즐기는 것 같아서 부러운 것이었을까? 욕구를 이루고 연기처럼 사라지는 돈을 아까워하지 않는, 돈에 연연하지 않는 초연함이 부러웠던 것일까? 매사 작은 목적이 있는 삶의 방식이, 쓰기 위해 돈을 모으는 것이, 이유 없이 모으는 것보다 바르다고 느낀 거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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