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지만 드디어 나답게 숨을 쉬다
이혼 후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일은
누가 상상하든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고단했다.
합의이혼 당시 양육권을 두고 다툼이 없었던 건 아니다.
결혼생활 내내 아이에게 큰 관심이 없던 사람이었지만
막상 이혼 이야기가 나오자
“내가 키우겠다”라며 버텼다.
그 말이 너무 두려웠다.
아이를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날 이후 나는 망설임 없이 집을 나왔다.
결혼생활 속의 나는 늘 ‘누군가의 주변’이었다.
무엇을 하든 허락을 받아야 했고
내가 선택한 사소한 일조차 ‘괜한 짓’으로 여겨졌다.
그런 나에게 이혼은 끝이 아니라,
비로소 내 인생의 시작 버튼이었다.
이제야 안다.
사람이 진짜 숨 막힐 때는
무언가를 잃었을 때가 아니라,
무언가를 하고 싶어도 못할 때라는 걸.
책 한 권을 사는 것도 쉽지 않았다.
나는 종이책 냄새를 좋아했다.
서점에서 마음에 드는 책 한 권을 집어 들 때마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이 고요해졌지만,
그마저도 허락되지 않았다.
“책 읽으면 돈이 들어와? 쓸데없는 짓 하지 마”
“책보지 말고 무료로 유튜브나 보면서 주식이나 배워.”
그래서 몰래 eBook을 켜고 글자를 훑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 작은 반항이 나를 지켜내던 유일한 숨결이었다는 걸.
공부라도 해보려 노트북을 켜면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애들이나 봐.”
아이들이 잠들고 나서야 살짝 불을 켜보면
“지금 자야지 또 뭐 하냐”며
불이 꺼지곤 했다.
그땐 그게 사랑이라 믿었다.
지금은 다르다.
아이들이 잠든 밤,
책상 위 노트북 불빛이 방 안을 비춘다.
펜을 들고 책장을 넘기며
조용히 내 안의 세계를 기록한다.
이건 허락받은 자유가 아니라
내가 만들어낸 나의 시간이다.
아이들이 아빠에게 가는 날이면,
비로소 진짜 ‘나만의 시간’이 생긴다.
그게 참 아이러니하다.
지금은 아이 둘을 돌보며
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가는데도
이상하게 내 시간이 있다.
예전엔 어른이 셋이나 함께 살았는데도
정작 내 시간은 한순간도 없었다.
늘 누군가의 눈치를 봐야 했고
조용히 숨 쉬는 순간조차 허락받아야 했다.
아이들과 함께 있는 지금이 오히려 덜 답답하다.
비로소 내 호흡으로 하루를 살아내고 있으니까.
시어머니와 전남편이 함께 있던 시절엔
단 한순간도 온전히 내 시간이 없었다.
퇴근이 늦으면 눈치를 봐야 했고
교육이 있으면 허락을 구해야 했다.
그때는 시간이 없어서 힘든 게 아니라,
내 시간 안에 나를 둘 자리가 없어서 힘들었다.
이제 아무도 묻지 않는다.
“오늘은 왜 늦었어?”
“애는 누가 봐?”
대신 나는 내게 묻는다.
“오늘은 나에게 어떤 하루였지?”
아이들이 없는 저녁
조용한 방 안에서 차를 내리고 책을 펼친다.
그 순간의 고요가 낯설지 않다.
이건 외로움이 아니라 평화다.
나는 여전히 아이들의 엄마다.
하지만 이제는
누구의 아내도 누구의 그림자도 아닌—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책을 읽 글을 쓰며
나는 조금씩 다시 살아나는 중이다.
아이들이 자는 시간에도 아빠에게 가 있는 시간에도
이제는 허무하지 않다.
아이들을 잃지 않으려 버텼던 세상 속에서
결국 나는
나를 되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