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소한 달빛 Apr 18. 2021

진정한 자신이 되는 길

문학아! 너라면? ④ - 장자크 루소의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융학파 정신분석가인 제임스 홀리스의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에서 마흔이 겪는 위기를 '중간항로'로 표현한다. 저자는 '중간항로(Middle Passage)'를 무사히 거치기 위해서는 외로움을 무릅쓰고 고독 속에서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그는 이 시기에 '나의 내면 아이는 뭘 좋아할까?'를 물어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안겨 준다고 말하며 무엇보다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현재 나는 제임스 홀리스가 말한 '중간항로'를 겪으며 진정으로 자아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면과 대화를 시도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누군가의 깊은 내적 성찰을 들여다보는 일은 자연스럽게 자신을 성찰하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은 불운하고 위대했던 철학자, 장자크 루소가 온전한 '나 자신'은 무엇인지 성찰하고 탐구한 내용을 기록한 작품이다.






'나'를 둘러싼 세계, 그리고 그 세계를 구성하는 사회와 인간에서 떨어져 나오면 온전히 '나 자신'만 남는다. 그럼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루소는 번의 산책을 통해 자신을 고독한 상황으로 내몰고 이 근원적인 질문에 성찰하고 탐구한다.


'자신 말고는 형제도, 이웃도, 친구도, 교제할 사람도 없는 외톨이가 되었다.'로 시작하는 첫 번째 산책. 루소는 그들에게서 떨어져 나온 '나'를 탐구 주제로 삼는다. 그는 자신에게 처해진 운명에 순종하며 평온함을 얻고 세상 사람들과 있을 때보다 고독 속에서 행복을 느꼈다.


이제 남은 생애 동안 혼자인 나는 위안도 희망도 평화도 내 안에서만 찾을 수 있으니, 오로지 나 자신에게만 몰두해야 하며 또 그렇게 하고 싶다...... 내 영혼과 대화하는 즐거움이야말로 사람들이 내게서 빼앗을 수 없는 유일한 것이므로, 그 즐거움에 완전히 빠져보려 한다.
<첫 번째 산책, p.14>


그에게 고독과 명상의 시간은 온전히 '나 자신'이 되는 유일한 시간이다. 그리고 자신을 성찰하는 습관은 불행의 기억을 잊게 해주고 진정한 행복의 원천이 우리 안에 있음을 경험을 통해 알게 해 준 시간이었다.


'나는 늘 배우면서 늙어간다'라고 말한 그는 자신이 배우기를 열망했던 이유도 남을 가르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알기 위해서며 남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충분히 아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성공과 헛된 희망에서 해방하여 정신적 휴식에 완전히 자신을 맡기고 고독한 상황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고독은 절대적인 은둔 생활 속에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이 무렵 그는 자신이 늘 하고 싶었던 악보 베끼는 일을 시작한다.


그는 진실과 거짓말에 관한 성찰을 통해서 자신의 나약함과 타고난 소심함에 대한 회한을 드러냈다. 그는 '적'이라고 해도 그들에게 현명하고 진실하며 겸손해지는 법을 배워야 하고 스스로를 과대평가하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루소 자신이 진정으로 행복을 맛보았던 생피에르 섬은 '모티에 투석 사건(몽블랭 목사의 선동으로 주민들이 그의 집에 돌을 던진 사건)'으로 피신한 곳이다. 그는 이 피신처에서 영원한 감옥으로 만들어 자신을 평생 가둬주기를 바랐고 자신이 세상의 존재를 잊어버리도록, 육지와의 모든 소통을 금지시켜주기를 바랐다.


그 행복은 무엇이며, 그 즐거움은 어디에 있었던가?..... 저 소중한 무위는 내가 그 달콤함을 최대한 맛보고 싶어 했던 즐거움 중 가장 중요하고 첫째가는 것이었으며, 그곳에 머무는 동안 내가 했던 모든 일은 실상 무위에 자신을 바친 사람에게 꼭 필요한 즐거운 활동뿐이었다.
<다섯 번째 산책, p.80>


이 시기에 그는 식물학에 몰두했고 섬에 있는 모든 식물을 하나라도 빠뜨리지 않고 묘사할 계획을 세웠다. 그는 저녁이 되면 호숫가 모래사장의 숨겨진 은신처에서 달콤한 몽상에 빠졌다. 이승에서의 삶은 우리의 마음을 불안하고 공허하게 만들고 무언가 욕망하게 만드는 덧없는 삶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이승에서의 삶을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루소에게 몽상은 피로를 풀어주고 자신을 즐겁게 해주지만, 생각은 자신을 지치고 우울하게 만들 뿐이다. 그는 몽상 속에서 자신의 영혼은 또 다른 기쁨을 넘어서는 황홀감을 느꼈고 이는 곧 상상의 날개를 타고 공상에 빠져들게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몽상을 하기에 자연은 더없이 좋은 환경을 제공해 주었고 식물학은 자신의 상상을 더욱 즐겁게 해주는 온갖 관념을 끌어모으게 해주었다.


초원, 하천, 숲, 고독, 무엇보다 평화와 이 모든 것 속에서 찾게 되는 안정이 식물학 덕분에 끊임없이 내 기억 속에서 되새겨진다. 식물학은 사람들의 박해와 증오, 멸시, 모욕, 그리고 그들에 대한 나의 다정하고 성실한 애착의 보답으로 그들이 내게 되돌려준 그 모든 고통을 잊게 해준다. ..... 식물학은 내 젊은 시절과 순수한 기쁨을 환기시켜 다시금 즐기게 해주며, 일찍이 인간이 겪은 운명 중에서 가장 비참한 운명에 놓여 있는 나를 여전히 종종 행복하게 해준다.
<일곱 번째 산책, p.126>


루소는 오랜 불안 끝에 평온과 평화, 행복을 되찾았다. 삶과 죽음, 병과 건강, 부와 가난, 명성과 비방을 똑같이 무심하게 보는 법을 배웠고 자신의 적들이 행한 역경을 극복함으로써 더 이상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이런 평온한 상태는 자신의 정신과 감각을 일깨워 타고난 감정들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다. 루소 자신은 타인의 표정, 몸짓, 눈짓 하나에도 자신의 기쁨을 깨뜨리고 고통을 주기에 충분하며 오로지 혼자 있을 때만 온전히 자신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자연은 항상 그에게 웃음을 주는 존재였다.






앞서 소개한 제임스 홀리스의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에서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해서는 자신과 끊임없는 대화를 시도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고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때 '고독'은 우리가 온전히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정신 상태라고 그는 정의한다.


외부 세계에서 정해준 '나'는 진정한 '나'와 충돌한다. 그리고 '나'를 둘러싸고 있는 외부 세계가 떨어져 나가면 온전히 '나 자신'만 남는다. 하지만 그동안 자세히 볼 기회가 없어서 이따금씩 자신과 마주했을 때 낯설게 느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낯선 내면은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타인에게 의지하며 휘둘리는 삶을 산 것은 아닌지, 고통 속에서 '자신'은 흔들리지 않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들과 마주하게 된다.


위대한 철학자 루소도 다가올 미래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고 자신의 나약한 성격을 자책하기도 했다. 루소는 그를 박해하고 사지로 몰아넣은 외부 세계를 철저히 차단하고 자신에게 행복주었던 자연과 함께 산책을 하며 고독을 즐겼다. 그리고 치열하게 내면을 성찰했다. 그 결과 그는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온전한 자아와 마주했다.


"내 마음과 이성은 그 확신이 나를 저버리지 않을 거라고 내게 외친다. 그러므로 사람들과 운명이 하는 대로 그냥 내버려 두자. 투덜대지 말고 고통을 견디는 법을 배우자. 모든 것이 결국에는 순리를 따르게 되어 있으니 조만간 내 차례가 올 것이다"

<두 번째 산책 중에서>





문학아! 너라면?

매거진의 이전글 자신의 존재 의미를 지켜낸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