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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한 달빛 May 16. 2021

나는 미미한 존재가 될 거예요

문학아! 너라면? ⑤ - 로베르트 발저의 <벤야멘타 하인학교>

프랑스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주체적으로 관계된 일에 참여'를 뜻하는 '앙가주망(engagement)' 제시했다. 그는 인간은 자신의 행동을 주체적으로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보았다. 여기서 우리의 행동과 선택은 자유이며 더불어 어떤 의사결정에 스스로 책임을 질 필요성에 대해서도 언급한다.(야마구치 슈,⟪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사르트르는 '개인'을 무엇보다 중요시하고 '나 자신으로 사는 삶'을 핵심 사상으로 여겼다. 그는 인간은 본질적으로 자유롭지만 자유를 억누르는 세력과 집단 속에서 인간은 완전한 자유를 누릴 수 없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모든 세력과 집단에 대항해서 싸울 것을 결심한다.


개인은 주체적으로 선택할 자유를 가지고 있지만 인간은 사회가 만들어 놓은 프레임에 맞춰 행동하고 그 결과를 '성공한 삶'으로 규정한다. 그런데 여기 성공과 발전을 거부하고 미미한 존재가 되어 누군가의 예속된 삶을 살기를 원하는 한 소년이 있다.






야콥은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귀족 집안의 그 콧대 높은 전통에서 완전히 등을 돌리기로 결심하고 하인을 양성하는 '벤야멘타 하인학교'에 들어간다. 야콥은 자신이 벤야멘타 학원의 훈련생이 된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나 스스로를 교육시키기 위해, 나 자신에게 미래의 자기 구현을 위한 준비를 시키기 위해 이 벤야멘타 학원의 훈련생이 되었다. 이곳에서는 장차 닥칠 힘겹고 음울한 그 어떤 미래에 대해서도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되기 때문이다. "


벤야멘타 하인학교의 원칙은 다음과 같다.


"적게 배우자! 매번 동일한 내용으로! 아주 철저하게!"


학급 친구인 크라우스는 이 원칙을 누구보다 훌륭히 수행한다. 정해진 규율을 거부하는 야콥과 달리 크라우스는 모든 감정을 버리고 규율에 복종하는 '바위'같은 인물로 등장한다. 크라우스의 감정에는 사랑하는 마음도 미워하는 마음도 없다. 크라우스가 원하는 것은 오직 정의와 선함뿐이다. 볼품없는 외모를 가진 크라우스를 야콥은 인간사회에서 존재하는 가장 아름다운 태도를 가졌다고 생각한다. 그는 크라우스의 인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크라우스는 결코 성공하지 못할 운명을 가졌다. 주목받지 못한 인생, 별 걱정 없이 편안하게 살아간다는 것, 그것이 경이로운 일이고 계획으로 충만한 것이다. 그는 크라우스를 진정한 신의 작품이며 무(無)이며 하인이다라고 말한다. 크라우스 자신이 원하는 것은 진정으로 보잘것없는 것을 수행해나가기를 원한다. 누군가를 돕고, 복종하고, 시중을 드는 일뿐이다. 크라우스는 항상 자신이 세운 어떤 규율을 따르며 산다. 크라우스는 이기심도 없을뿐더러 철저한 규율에 사로잡혀 사는 인물이다.



훈련생 자신들은 학교에서 시키는 대로 할 뿐 왜 그것을 해야만 하는지, 그걸 제대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야콥은 자신들을 끊임없는 복종의 의무를 가진 '난쟁이'라고 묘사한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단지 '벤야멘타 소년학교가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가'라는 교본이 있을 뿐이다.


야콥은 성공을 위해 달리는 사람들을 경멸한다. 그가 바라보는 성공하려는 사람들은 모두 '퇴색된 친절함'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은 '불안'을 느끼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야콥은 그들은 단지 세상에서 부딪쳐 가야 할 고통 때문에 친절하고 불안 때문에 상냥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야콥은 최상류 층 사람들에게는 아름다움과 참된 것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고 무엇인가를 애타게 찾고 있지만 부귀와 동화 속 재물을 동경할 뿐이다라고 말한다.

그들에게는 조급함, 갈망, 고통. 불안만이 빛을 내고 있을 뿐이다.


벤야멘타 학원에서는 '상실감'을 느끼는 법을 배운다. 자의식에 충만한 사람들을 그는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자기 자신을 너무 높이 평가하는 사람은 자신감을 잃게 되거나 모욕을 당하게 될 때 위태롭다. 자의식에 찬 사람들은 의식에 적대적인 무언가를 끊임없이 맞닥뜨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 생도들에게 아무런 존엄성도 없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그것에 매우 유동적이고 작고 유순하고 순응을 잘한다는 것이다.







야콥의 형인 요한도 대중은 현대판 노예이며 개인은 집단사고의 노예라고 말한다. 그는 야콥에게 가난하고 경멸받으면서 살기를, 부자들은 늘 불만에 가득 찬 인간이며 불행하며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굶주린 자들이라고 말한다. 요한은 야콥에게 모든 것에 만족하고 노력하고 배우고 사람들에게 사랑과 선한 일을 행하라고 조언해준다.


야콥에게 자아는 타인에게 존중의 대상이 아니라 그저 바라보는 대상일 뿐이다. 그리고 자신 안에는 존중할 만한 어떤 것도, 볼 만한 것도 없음에 행복해한다.


작게 존재하고 작게 머무는 것, 그 어떤 손이 , 상황이, 어떤 물결이 나를 높이 들어 힘과 권력이 지배하는 곳으로 데려간다면, 난 나에게 특권을 주는 이 상황을 깨부숴버릴 것이다. 그리고 나 자신을 저 밑, 아무 말 없는 어둠 속으로 던져버릴 것이다. 난 오직 저 밑의 영역에서만 숨을 쉴 수 있다.






야콥은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그는 살아간다는 것이 너무 즐거웠고 그것을 온몸으로 느꼈다. 가지와 줄기를 한껏 뻗은 나무처럼 삶은 멀리 향한 우리의 시선 앞에서 찬란하게 빛나고 있음을 느꼈다. 그는 꿈에서 깨어나 벤야멘타 원장과 함께 새로운 인생을 함께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말한다. 삶이 원하는 것은 성찰이 아니라 격동적인 움직임이라는 것을. 벤야멘타 학교의 여선생님은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학급 친구들은 일자리를 찾아 모두 떠났다. 이제 남은 두 사람, 벤야멘타 원장과 야콥은 사막으로 떠난다.


"황야에도 삶이라는 것이 있는지 보고 싶다. 호흡하고, 존재하고, 정직하게 선을 추구하며 살게 되지는 않을지 보고 싶다. 밤에 잠을 자고 꿈을 꿀 수 있는지도 알고 싶다.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가. 이제부터 나는 그 무엇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야콥은 자신을 힘과 권력이 지배하는 곳으로 데려간다면 이 상황을 깨부숴버릴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의 고용주에게 예속되어 복종하는 삶을 살기를 원했던 야콥은 분명 사회 속에서는 하찮은 존재다. 하지만 야콥이 그토록 경멸했던 성공을 위해 사는 사람들에게는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하는 주체적인 개인'은 보이지 않는다.


야콥이 스스로 선택한 미미한 존재의 삶은 어떻게 보면 성장과 발전을 거부하는 퇴보된 삶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르트르가 제시한 '앙가주망',  주체적으로 자유롭게 선택하고 행동했다는 점에서 위대한 존재로 느껴진다. 그리고 그가 말한 '나 자신으로 사는 삶'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야콥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든 것에는 방식에 달려 있다. 세상에는 어리석고 무지한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가 주어진 상황을 견디면서 적응해나가고 행동할 줄 알게 된다면, 그의 인생은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똑똑한 사람, 지식으로 똘똘 뭉치 사람보다 삶을 헤쳐 나가는 방법을 더 잘 찾을지도 모른다. 방식, 그래, 그것이다."





참고 문헌

야마구치 슈,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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