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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는 없지만 료마는 많은,
고치

이 글은 함께 여행한 두 명의 저자가 참여하였습니다. <오변의 여행일기>에서는 여행지에서의 감상을 오변이, <강쉡의 먹방일기>에서는 여행하며 먹었던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강쉡이 썼습니다.


오변의 여행일기


고치 현은 시코쿠 남부에 있는 곳으로 일본에서도 돗토리, 시마네 현과 함께 인구가 가장 적은 곳이기도 하다. 고치 현의 인구는 약 68만 명이고 현청 소재지인 고치 시의 인구는 31만 명 정도이다.


이곳은 외국인 관광객으로서는 아주 낯선 곳이다. 철도 망이 촘촘하고 웬만한 도시나 낙도에도 공항 하나씩은 있는 일본에서도 접근하기가 굉장히 까다롭다. 한국에서 간다면 최근에 생긴 다카마쓰 직항 노선을 타고 내려 기차로 몇 시간을 가야 한다. 신칸센이 없는 시코쿠에서는 철도가 거의 해안을 따라 나 있는데 그 넓은 시코쿠 섬을 반바퀴나 돌아야 하는 도착할 수 있는 먼 거리다. 그나마 고속버스를 타면 시간을 좀 단축할 수 있다. 게다가 딱히 굉장한 건축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키나와 같이 멋진 해변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외국인 관광객 입장에서는 굳이 이곳을 딱 집어서 와야 하는지 그 필요성이 많지 않을 것 같다.


나 역시 처음 들어보는 곳이고 해서 딱히 힘들게 가야 하나 싶었는데 강쉡이 책을 보고 꼭 이곳에서 타다키를 먹어야 한다고 해서 굳이 이 먼 곳까지 가기로 했다.


이렇게 접근도 불편하고 관광 인프라도 딱히 없다 보니 고치에서 내세우는 것은 이 지역 출신의 위인 ‘사카모토 료마’다. 이 사람의 사진과 동상은 고치 어디에 가도 볼 수 있는데, 아직 자본의 힘이 덜 들어갔는지 캐릭터화해서 아기자기하게 만든 것보다는 그저 사진과 동상을 그대로 본떠 만든 상품들이 많다. 고치에서는 어딜 가도 죄다 료마라서, 뭘 이렇게까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사카모토 료마

사카모토 료마는 일본인이 좋아하는 위인을 꼽으면 항상 순위에 드는 인물이다. 31세의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도 암살을 당했다. 그가 사망한 때가 1867년으로 어마어마한 과거는 아니라서 오래된 흑백 사진이 남아 있다.


사카모토 료마는 일본 근현대사를 공부하면 반드시 등장할 수밖에 없는 인물인데, 일본사에 관심이 없더라도 일본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리메이크된 드라마 <JIN -진->의 주요 인물 중 하나이다. 이 드라마는 2개 시즌으로 2009년과 2011년에 방영되었는데 원작은 만화 <타임슬립 닥터 JIN>이다. 나는 드라마는 두 번쯤 본 것 같고 만화도 꽤 재미있게 보았던 기억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닥터 진>이라는 이름으로 리메이크했는데 송승헌 배우가 주연을 했다. 사카모토 료마는 우리나라 편에서는 이하응으로 대체되었는데 이범수 배우가 연기했다.


원작 만화와 일본 드라마는 의사인 주인공 진이 과거로 타임슬립하여 현대의학 지식으로 사람들을 살려가는 이야기인데, 일본의 원작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국의 리메이크작은 많이 실망스러웠을 것 같다. 원작은 당장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역사를 바꾸거나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라면 리메이크작은 정치갈등이 부각되어 원작만큼의 감동은 주지 못하였다는 평이 있다. 김범수 배우가 맡은 이하응이라는 인물이 양면성이 있기는 하나 사카모토 료마처럼 대중에게 인기가 있는 인물도 아닌 데다가 양국의 역사가 다르니 개작에는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원작 일본 드라마에서 좀 아쉬운 게 있다면 드라마에서는 사카모토 료마가 마치 40대 남성처럼 그려졌는데 실제와는 많이 다르다. 그보다 훨씬 젊은 친구다.


title-752.jpg 드라마 <JIn -진-> 포스터. 오른쪽 두 번째가 사카모토 료마 @TBS챤네루


사카모토 료마는 사쓰마 번과 조슈 번 사이에 동맹, 이른바 삿초동맹을 성사시킨 인물이다. 이 두 번은 원래 원수 지간이었는데 조슈 번이 반막부 개혁파가 주류였던 것에 반해 사쓰마 번은 쇼군가와 사돈지간이어서 친막부 세력이었다. 조슈 번이 교토를 장악할 것을 우려한 막부에서는 조슈 번을 토벌하기 위해 총동원령을 내리나 결국 삿초동맹이 성립하며 막부가 힘을 잃고 이듬해인 1868년 대정봉환으로 권력이 막부에서 덴노로 옮겨가게 된다. 이후 메이지 유신으로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서구화에 들게 된다. 다만 최근에는 삿초동맹에서의 료마의 역할을 부정하는 주장도 있다.


고치성은 일본에서 혼마루(성 중심부의 건물군)가 완전히 남아 있는 유일한 성이다. 고치 성은 14세기에 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현재 남아있는 건물들은 대부분 대형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에도시대인 1753년 재건된 것이다. 2차 대전 때 고치가 공습을 받았을 때에도 살아남았다. 고치 성의 15개 건물은 일본 중요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다. 역사적으로 매우 가치가 높은 건축물임에는 틀림없으나 솔직히 설명을 들어도 잘 모르겠고 그냥 크고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관광객 입장에서는 이곳을 보기 위하여 한나절을 다 써서 일본에 와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48D7D3F1-A50F-4E42-93B8-195713545472_1_102_a.jpeg 고치성 천수각


우리가 고치에 간 때는 마침 일요일이었다. 일요일에는 고치성으로 가는 도로에 일요시장이 서는데 관광객 입장에서는 이게 굉장히 볼만하다. 상설시장과 달리 이곳에서는 각종 채소와 과일 외에도 소소한 먹거리들과 골동품, 공예품 등을 판다. 규모가 상당히 커서 꽤 오래 걸으며 구경할 수 있다.


1B208A25-CDEC-412E-B963-CEDAB1039CC9_1_102_a.jpeg 고치 일요시장


고치성 입구 쪽에도 넓은 광장에 벼룩시장이 서는데 정말 집에서 안 쓰는 물건임이 분명한 물건들을 내놓고, 돈을 번다기보다는 그냥 버리는 수준의 가격으로 판다. 그릇이나 소품을 많이 파는데 가격은 아주 쌀 때가 많고 무료로 나눌 때도 있다. 우리도 남은 여행일정이 길지 않았다면 집어오고 싶은 물건이 꽤 있었다. 그런데 정말로 장사할 생각이 없는 벼룩시장이라 워낙 일찍 닫으니 부지런히 구경을 해야 한다.


고치에는 일요시장 말고도 히로메 시장이라는 상설시장이 있다. 이곳에서는 고치의 명물인 타다키와 회, 덴뿌라 등을 파는 상점과 식당이 늘어서 있다. 상점에서 먹을 것을 사서 빈자리 아무 데나 앉아 먹을 수 있는데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아서 한참을 기다려도 두 사람 자리를 구할 수 없었다. 게다가 하도 시끄러워서 자리가 있었어도 온전히 음식을 즐길 수도 없게 생겼기도 했다. 실내에 있는 데다 사람이 너무 많아 대낮에도 어둡고 이동 자체가 힘들다. 짚불을 사용하는 타다키 집이 많아 화재에 취약할 것 같은데 사소한 화재라도 나면 대형사고로 이어지기 딱 좋은 환경이다.


9483C81C-C4E7-4606-B704-F52BB6E68B61_1_201_a.jpeg 히로메시장 안


우리는 고치성에 시장까지 꼼꼼히 구경하고 나서 그냥 돌아가기 아쉬워 소위 일본 3대 실망명소 중 하나라고 하는 하리마야바시(하리야마 다리)로 갔다. 이곳의 이름을 딴 하리마야바시 역은 노면전차 도멘선, 이노선, 신바시선이 만나는 교통의 요지다. 이 빨갛고 짧은 다리는 슬픈 사랑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고 하는데, 그 이야기를 소재로 한 TV드라마 때문에 유명하다고 한다. 이 다리를 제목으로 한 한미일 합작 영화 <하리먀야 다리>가 제작되어 2008년 칸 영화제에 출품되기도 했다. 이러한 유명세에 비해 실제로 가 보면 너무 새것처럼 보이는데 실제 다리는 따로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모티프가 되었지만 사실은 다 건널 때까지 한 10 발자국이나 될까 싶은 곳이다.


8CD39C0A-3B6E-410A-8DD7-FA654A7D93D7_1_102_a.jpeg 하리마야바시

사실 나는 고치에 대단한 기대는 하지 않고 갔었는데 소소하게 볼 거리가 많은 곳이었다. 고치 성이야 일본에 비슷하게 생긴 것이 워낙 많으니까 별 감흥은 없었지만 오히려 일요시장과 벼룩시장이 재미있었다. 상설시장인 히로메 시장은 워낙 사람이 많아서 별로였다. 한국에서 오로지 이 곳만을 위해서 긴 휴가를 쓰기는 아까울 것 같고 시코쿠를 느긋하게 여행할 때 일요시장이 열릴 때에 맞춰 하루이틀 쯤 머물면 딱 좋을 것 같다.



강쉡의 먹방일기


사실 고치는 거리가 멀어 계획을 세울 때 망설였다. 하지만 이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특별한 명물이 있고 ‘우리가 언제 또 오겠어’라는 마음이 생겨 하루를 넣었다. 참 마법 같은 문장이다. '언제 또 오겠어'라는 마음을 먹으면 단숨에 욜로족이 되어 비용과 체력을 아끼지 않는다. 자주 써먹으니 알뜰하고 계획형 인간인 오변은 이 문장을 내뱉는 나에게 그만 써먹으라고 타일렀다.


마침 도착한 날이 일요일이라 매주 일요일에 열리는 일요시장을 가봤다. 고치에는 이런 노천시당이 흔하다는데 그중에 일요시장이 규모가 크다고 한다. 고치성으로 이어지는 거리 약 1.3km에 걸쳐 500개 정도의 노점이 선다고 한다. 날씨요괴의 가호로 비가 조금씩 내려 평소의 활기보다는 약간 덜한 듯했지만 사람들은 많았다. 관광객 대상이라기보다는 일본인을 대상으로 직접 키우는 채소나 과일, 토산품으로 만든 주스, 음식 등을 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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鍋焼きラーメン 城 |


뜨끈한 냄비에 바글바글 끓여 나온다는 고치 명물 냄비라면 집을 찾았다. 법랑냄비에 뜨겁게 끓여 내는 라면이다. 더운 동네는 다들 비슷하게 뜨끈한 닭육수를 사용한 요리가 많다. 뜨끈한 국물에 어울리는 고명이 치쿠와 어묵과 닭고기, 대파, 양배추가 들어있다. 계란 노른자를 터트리면 뜨거운 국물에 금방 익는다. 닭의 감칠맛이 가득하면서도 의외로 깔끔해서 술술 넘어간다. 기호에 맞게 밥을 추가해서 말아먹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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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는 3대 실망스러운 관광명소라는 곳이 있는데 삿포로의 시계탑, 오키나와의 슈레이문 그리고 고치에 있는 하리마야 다리라고 한다. 오히려 이러한 소문으로 사람들이 더 많이 방문하는 것 같다. 조그마하지만 길사이로 있는 빨간 다리가 인상적이다. 사랑에 관한 사연을 갖고 있는 다리로 이러쿵저러쿵해도 많은 사람들이 와서 인증샷을 남긴다.


히로메 시장 |


상점거리 초입에는 히로메시장이 있다. 60여 개의 점초가 들어선 노점 시장으로 여러 가지 안주를 구매해 앉아서 먹는다. 입구에 들어서면 다양한 회부터, 튀김, 교자, 초밥 등 먹음직스러운 것들을 잔뜩 판다. 앉으면 자릿세 개념으로 음료나 술을 시켜야 되는데 보통 이 고장 명물인 유자사와 와 맥주를 많이 시킨다. 왁자지껄한 시장 분위기는 너무 좋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 자리도 없었고, 이사이에 섞여서 먹기는 조금 부담스러워 맛보고 싶은 것들을 잔뜩 사서 숙소에 한상을 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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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다랑어(가츠오) 타다키


고치에 온 목적이 바로 본고장의 가다랑어 타다키 먹고 싶어서였다. 가다랑어 타다키는 가다랑어의 겉면을 익혀 지방을 활성화시키고 두툼하게 썰어 쪽파와 시소잎 마늘을 곁들여 먹는 음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하게 생마늘을 곁들이지만 일본에서 이렇게 생마늘을 대놓고 곁들이는 세팅은 처음 봤다.


이 두툼하다는 표현이 맞는 게, 정말 크게 썰어져 있어 한입에 다 들어가기 힘들 정도다. '회'라기보다는 스테이크를 먹는 느낌이다. 짚불의 독특한 향과 지방의 고소한 맛이 어우러져 담백하고 감칠맛이 넘친다. 소금이나 폰즈를 기호에 맞게 뿌려 먹는데 최근에는 소금이 좀 더 유행한다고 한다. 생선 맛 자체가 기름지기 때문에 여러 향신채를 곁들여 먹는 듯하다. 결과적으로는 대만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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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치 타다키


예전에 유명한 초밥만화에서 곰치에 대한 맛표현이 있는데 흡사 고급스러운 닭고기 맛이 난다고 표현한다. 이번에 먹어보니 왜 그런 느낌이 난다고 하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육고기의 잡내 같은 것이 아예 없어 깔끔하지만 맛은 담백하다. 겉면의 식감이 독특한데 가다랑어가 물컹 거리는 회의 식감이라면 이쪽은 탱글탱글하다. 족발의 콜라겐 같은 식감이다. 회에 더 가깝기 때문에 맛자체는 간이 안되어 있어 조금 힘들게 소금이나 간장을 뿌려야 그 담백한 맛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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