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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택변호사 오광균 Oct 26. 2023

사랑에 빠질 것 같은, 사빠

하노이에 사빠로 가는 이층 침대 버스를 탔다. 안전벨트가 없다. 앉아 있으면 멀미가 난다. 한 자리만 예약해도 되었을 것 같은데 클룩 고객센터에서 안내를 잘못해 줘서 두 자리 나 예약을 했다. 덕분에 널찍하게 편하게 갔다.


버스에서 내리니 택시가 사기를 친다. 그랩으로 확인할 땐 3만 동(약 1,600원)이면 갈 수 있는 거리인데 9만 동을 부른다. 장거리에 힘들어서 알면서도 사기를 당했다.


사빠는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 있는 곳으로, 대충 아무 데서나 보아도 온통 그림 같은 곳이다. 숙소에 가서 창문을 열었더니 5성급 호텔 부럽지 않은 멋진 뷰가 펼쳐진다.



이토록 멋진 산과 논이 펼쳐진 이곳은 얼마 전부터 한국을 비롯한 해외에 소개가 많이 되면서 흔해빠진 관광지가 되어 버렸다. 한국에서도 마치 오지처럼 소개된 깟깟마을은 이제는 주민들이 원래의 생활을 포기하고서 본격적으로 관광객 주머니 털기에 나섰다. 테마파크도 아닌데 마을에 들어가려면 입장료를 내야 하고 막상 들어가면 그냥 어디에서나 살 수 있는 물건을 판다. 이제는 소문이 나서 패키지 관광객이 아니면 잘 찾지 않는다. 우리도 돈 내곡 호갱이 되기 싫어 가지 않았다. 그렇게 아름다운 산촌 마을은 촌스러운 관광지가 되어버렸다.


사빠 역시 점점 시끄럽고 촌스럽고 흔하디 흔한 관광지가 되어가고 있다. 특히 베트남 부동산 대기업이 죄다 망쳐놓았는데 더 망가지기 전에 빨리 가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사빠 역시 길을 걸으면 호객꾼으로 넘쳐난다. 그래도 하노이처럼 심하지는 않고 성매매 권유도 보이지 않았다.


인도차이나의 지붕이라고 부르는 판시판 산에 오르려면 부동산 대기업이 만들어 놓은 모노레일을 타고 유치한 테마파크를 거쳐 아주 긴 케이블 카를 타야 한다. 입장료가 아주 비싸서 소득이 많지 않은 평범한 베트남 사람은 큰 맘을 먹고 가야 할 것인데, 그래서 그런지 로컬 관광객들은 참 매너가 없다.



무려 해발 3,143m. 인도차이나 최고봉에서는 베트남 국기를 들고 사진을 찍는다. 독사진을 찍기 위해서 방해가 되는 사람이 있으면 보통은 그냥 밀어버린다. 문화 차이라고 하기에는 이해하기 어렵다.



판시판 정상은 일종의 불교 테마파크다. 베트남에 불교 신자가 많지 않은데 불교를 테마로 하는 이런 공원들은 참 많이 조성되어 있다.


이 부동산 대기업은 다낭에도 바나힐이라고 하는 테마파크를 조성해 놓았는데, 바나힐이 국적을 알 수 없는 짝퉁 유럽에 가짜 성당과 절을 만들어 놓았다면, 판시판이 철저히 불교를 테마로 하고 있다.


베트남에서 '레이디 붓다'라고 부르는 관세음보살상은 마치 리오의 예수상을 연상케 하여 거대하고 멋지다. 레이디 붓다와 쌍을 이루는 불상 역시 거대하고 웅장하다. 그런데 부처님의 눈은 슬퍼 보였고 관세음보살님도 어쩐지 외로워 보였다. 본의 아니게 이 아름답고 웅장한 자연을 훼손하고 있어서일까.



숙소에서 운영하는 트래킹 투어를 갔다. 여기 사빠는 지금은 서양인과 한국인, 대만인, 홍콩인이 사는 마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흐몽족 또는 몽족 또는 묘족 또는 마오족이라고 부르는 소수민족이 사는 곳이었다.


전통복장을 한 아주머님 몇 분과 함께 산을 오르는데 정식으로 개발된 길이 아니라서 아주 험하고 미끄러웠다. 엄청나게 힘들었지만 힘든 것마저 재미가 있다.


굽이굽이 고개를 넘으면 고생길에 보답이라도 하듯 거대한 자연과 그걸 또 가꾸어 계단식 논으로 작물을 키워내는 인간이 만들어낸 합작품이 나타난다.



소들은 그 논 사이로 마치 길고양이처럼 동네를 돌아다닌다. 나는 그들을 길소라고 불렀다.



안타까운 건 길목마다 아주 어린아이들이 달라붙어서 실팔찌 같은 것을 내밀며 사실상 구걸을 하고 있었다. 이제는 아이들의 물건을 사 주는 것이 아이들을 망치는 일이라는 것을 다들 알고 있어서 실제로 물건을 파는 데 성공한 경우를 보지는 못했다. 그래도 참 마음이 쓰였다.


이 아름다운 산길을 걸어 걸어가다 보면 어느새 실개천이 흐르고 인가가 드문드문 나타난다.



그러다 우리 가이드가 안에 들어가 볼 수 있도록 허락을 받은 집이라며 실제 사람이 사는 집을 하나 들어가 구경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침대며 세간살이들이 참 사는 게 녹록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가난을 전시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좋지는 않았다.  



다만, 주민분들은 참 영어도 잘하시고 최신 스마트폰도 하나씩 가지고 계신다. 관광지의 반전이랄까.


길을 걷다 보면 또 길소가 길을 막아선다. 엉덩이라도 토닥여 줘야 할까 싶다.



옛날 시골집이 생각나는 나무집에서 전통 복장을 입은 할머니가 향을 말리고 계셨다. 계피향 비슷한 게 제사 지낼 때 쓰는 보통 향 같지 않고 냄새가 참 좋았다. 할머니의 놀라운 영어 실력은 역시 관광지의 반전매력.

 


또 다른 집에서는 할머니가 귀신같은 솜씨로 베 짜기를 하고 계셨다. 그 솜씨가 하도 날래고 대단해서 허락을 받고 촬영을 했다. 물건을 파는 곳은 아니었는데 아마 베 짜기 솜씨에 자부심이 있는 할머니라 외국인들에게도 자랑하고 싶으셨던 것 같았다.



사빠의 자연과 풍경은 베트남에서도 압도적이다. 트래킹은 정말 힘들지만 사빠에 왔으면 꼭 해봐야 한다.


안타까운 것은 너무 관광지가 되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부동산 대기업이 건드려서 망쳐놓은 판시판은 그렇다 쳐도 온통 마사지 업소에 짝퉁 의류, 술집뿐인 시내는 볼 것도 없고 재미도 없다. 그랩으로는 차를 불러도 오지 않고 택시기사들은 무조건 원래 요금의 3배 이상을 부른다. 바가지를 쓰지 않으려면 숙소에 택시를 불러달라고 부탁해야 할 정도다.


부모들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구걸을 시킨다. 그게 돈을 더 쉽게 벌 수 있어서다. 아이들이 불쌍한 척 연기를 하는 것을 보고 함께 트래킹을 한 마음 약한 서양인이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이제는 덜 유명해져서 덜 관광지화 되었으면 좋겠지만 덜 유명해지기에는 너무 멋진 곳이라 오히려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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