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뉴스를 보았다.
'이혼소송 조정 중 아내 살해, 20대 남성 범행현 장서 체포'라는 제목이었다.
https://www.yna.co.kr/view/AKR20171127016000004
이 기사 제목을 본 변호사라면 당연히 '법원 안'에서 살인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왜냐하면 조정은 법원 안에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민사나 형사사건은 다르지만, 이혼 사건에서 조정을 할 때에는 보통 조정장인 판사가 직접 조정을 할 때도 있고, 대개는 남성 1명, 여성 1명으로 구성된 조정위원 2명이 중간에서 조율을 한다. 법원 특성상 당사자들이 싸우는 때가 많고 심심치 않게 폭행도 이루어지기 때문에 근처에 경위분들도 많다. 게다가 법원에 들어올 때는 항상 소지품 검사를 하기 때문에 흉기를 가져오기도 쉽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살인이 가능하다는 것은 매우 계획적인 범죄라고 할 수 있고, 변호사로서는 두려운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기사 본문을 보니, 실제 내용과 달랐다.
경찰은 조 씨와 A 씨가 합의이혼 소송 조정 중인 사실을 확인하고, 정확한 범행 동기를 수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혼을 하는 방법은 세 가지다. 협의이혼, 이혼 조정, 이혼 소송. 화해권고나 조정을 갈음하는 결정으로 이혼이 될 수도 있지만, 이는 이혼 소송 중의 절차이므로 사실 소송으로 이혼이 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점은 지난번 글에도 언급한 적이 있다.
https://brunch.co.kr/@sosong/14
기사와 달리, '합의이혼'이라는 제도는 없다. 그런데 보통 '협의 이혼'을 '합의 이혼'이라고 잘못 부르는 경우가 많으니, 이 정도는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가사소송법에는 '협의이혼'으로 되어 있으므로 '협의이혼'이라고 불러야 한다)
그런데 협의 이혼에는 '조정'이라는 절차가 없다. 조정은 이혼 조정 신청을 하였거나, 이혼 소송 중 조정 절차에 회부된 경우에 가능하다.
'조정'이라고 하면, 법원에서 조정기일에 출석하여 당사자끼리 협의하는 절차다. 보통 짧으면 1시간 내에 길면 2시간이 넘게 걸리기도 하지만, 그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 경우는 흔치 않다. 즉, '조정 중'은 그 몇십 분에서 2시간 정도의 시간 중이라는 말이다.
다만 2007년에 민법이 개정되면서 숙려기간제도가 도입되었는데, '숙려기간'을 '조정기간'이라고 잘못 부르는 경우가 있다. 잘못 부르게 된 원인이 무엇인지는 도무지 모르겠다.
여기까지도 그냥 넘어가자고 치자.
그런데, '합의이혼 소송 조정 중'이라는 말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협의 이혼은 소송이 아니다. 협의이혼은 당사자 사이에 이혼에 관하여 합의가 되었기에 이를 확인하는 절차인 것이고, 소송은 당사자 사이에 합의에 이를 수 없기에 법원의 판단을 구하는 절차다.
위 짧은 단어 몇 개에 우리나라의 모든 이혼 제도, 즉 협의이혼, 이혼 조정, 이혼 소송이 모두 들어가 있는 것이다.
위 연합뉴스 기사 말고, 다른 언론사에서는 같은 사실관계를 어떻게 보도하였는지 찾아보았다.
채널A "이혼소송 조정 중 아내 살해"
YTN "이혼소송 조정 중인 부인을 숨지게 한 20대 남성이 구속됐습니다."
또 다른 YTN "조 씨와 A 씨는 이혼 소송 조정 중이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여기까지의 뉴스들은 모두 '이혼소송 조정 중', 즉 법원 안에서 살해하였다고 보도하였다.
OBS "이혼소송 중인 부인을 살해한 2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OBS는 그냥 소송 중에 있다고만 보도한 것으로 보인다.
MBN "조 씨 부부는 합의이혼을 위한 소송 중이었는데, 경찰 조사 결과 조 씨는 별거 중이던 피해자의 집에 찾아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협의 이혼은 접수하면 되지, 왜 소송을 하나...
연합뉴스 TV "이혼소송 조정 기간에 아내를 찾아가 흉기를 휘둘러 숨지게 한 2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조정 기간'은 보통 2시간 내이며, 서로 같은 장소에서 이루어진다. 찾아가고 말고 가 없다.
JTBC "어제 오후 6시쯤 서울 대치동 빌라 앞에서 이혼소송 조정 중인 부인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24살 조모 씨가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조정은 대치동 빌라에서 하는 게 아니라 법원에서 하는 것인데...
SBS "당시 A 씨와 B 씨는 별거하면서 합의이혼 조정 기간에 있었습니다."
협의이혼에는 조정기간이 없다니까...
또 다른 SBS "어제(26일) 저녁 20대 남성이 이혼 소송을 벌이던 부인을 흉기로 찔러 숨지게 했습니다."
아까는 협의 이혼이라면서 이번엔 소송 중이라고..
또또 다른 SBS "어제(26일) 저녁 20대 남성이 이혼 소송을 벌이던 부인을 흉기로 찔러 숨지게 했습니다.", "당시 A 씨와 B 씨는 별거하면서 합의이혼 조정 기간에 있었습니다."
앵커는 소송 중이라고 하는데, 기자는 협의이혼 조정(?) 기간이라고...
조 씨 부부는 협의이혼 숙려기간 중이었을까, 소송 중이었을까, 소송 중 법원 안에서 조정기일이 진행되던 중이었을까. 그런데, '집에 찾아갔다'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협의이혼 숙려기간 중이었을 것 같다.